[지윤정의 성공파도]<444>비참한 을의 인생

다음 세상에선 `을`로 태어나지 말고 `갑`으로 태어나고 싶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못한다는 것을 못한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가 `을`의 처지다. 금요일 5시에 전화해서 월요일 아침까지 시안을 보내달란다. 제안 넣고 2주째 함흥차사였던 클라이언트가 갑자기 전화해서 이거 바꿔라 저거 바꿔라 닥달이다. 관자놀이에 빠직하고 힘줄이 솟지만 본능적으로 접대용 멘트가 술술 나온다. 비참하고 비굴한 내 인생, 눈물도 한숨도 씹어 삼킨다.



갑남을녀들이 모여 갑론을박한다. 원래 갑과 을은 불특정 다수를 일컫는 말이다. 누군 태어날 때부터 갑이고 누군 죽을 때까지 을일까. 갑이 을이 될 때도 있고 을이 갑이 될 때도 있다. 우린 모두 상대해야 할 고객이 있고 한 발짝만 물러서면 누군가의 고객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 서비스를 해야 하는 `을`이고 아내가 `갑`이다. 바꾸어 아내는 남편에게 아내서비스를 해야 하는 `을`이고 남편이 `갑`이다. 영업부는 고객 앞에서는 `을`이지만 사내 총무과에게는 `갑`이다. `갑`이라고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권력을 행사하면 어딘가에서 `을`로서 허리를 굽신거리며 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부린 횡포에 누군가가 쓰러져서 내 발을 걸고, 내가 누린 특혜에 누군가가 희생되서 내 목을 칠 것이다. 갑이라고 고개 세우지 말고 을이라고 허리 굽히지 말자. 우리는 서로 파트너일 뿐이고 협업할 따름이다. 다만 나의 `갑`이 나에게 얼토당토한 요청을 하면 `아, 지금 누군가에게 당해서 저렇구나. 저분의 `갑`이 저분에게 저러는구나`라고 이해하자. 당한 만큼 복수하는 단순한 사람이 그렇다. 부러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자. `얼마나 당했으면 나에게 이럴까?`라고 동정하자. 정말 해야 할 일은 횡포를 부리는 `갑`을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내가 `갑`일 때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