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근친교배와 멸종

한때 아이폰은 삼성전자 임직원의 첫 번째 금지 품목이었다. 철모르고(?) 아이폰을 샀거나 삼성전자 근무 시절 이전에 아이폰을 구매해 소지했던 삼성전자 직원들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휴대폰 분야에서 승승장구했던 삼성전자에 커다란 충격과 위협을 가했으니 애사심이 충만한 삼성전자 직원들이 아이폰을 가진 동료가 이상해 보이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만난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직원들이 한때는 얄밉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며 “경쟁사 제품을 써봐야 우리 제품이 뭐가 잘못됐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더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은 최근까지 직원들에게 맹목적인 애사심을 강요했다. 직원들을 넘어 협력회사에도 그랬다. 현대자동차 사업장에는 여전히 현대자동차가 대부분이다. 예전에 협력회사 임직원이 현대차가 아닌 차를 몰고 방문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고 하면 경비가 아예 주차하지 못하게 했다. 통신사업자도 마찬가지였다. SKT · KT · LG유플러스 직원 모두 자사 통신망과 단말기를 사용하는 게 당연했다. 통신 3사와 모두 협력하는 중소기업 사장과 영업직원들은 최소 석 대의 휴대폰을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 SKT 임직원 중에서도 일부는 아이폰을 사용한다. 다수는 아니지만 일부는 경쟁사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해야 우리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회사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맹목적 애사심보다는 직원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합리적인 논리를 수용한다. 이종교배가 더욱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고 근친교배는 멸종의 지름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가 애플에 대한 반감을 거침없이 드러내 화제를 낳았다. 세계 최대 자선재단인 빌앤드멜린다게이츠 재단의 공동의장이기도 한 그녀는 미국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플의 `아이팟`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 “아니다”고 딱 잘라 말하며 “마이크로소프트(MS)의 MP3플레이어인 `준(Zune)`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애들이 아이팟을 가지고 싶다고 말 한 적이 있지만 이 역시 `준`을 사용하면 된다고 일러줬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최근 빌 게이츠가 애플의 노트북PC인 `맥북`을 쓴다는 소문에 대해서 그녀는 “애플 제품은 그 어떤 것도 우리 집을 들어오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IT기업이다. 영업이익률은 40%에 육박하며 전 세계 PC 운용체계의 90% 이상을 점유한다. 건재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신규 사업은 뚜렷하지 않고 주력 사업인 PC 부문은 애플 · 구글 등이 호시탐탐 위협한다. 기존 비즈니스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CEO, 경쟁사 제품을 전혀 수용할 수 없다는 창업자의 부인은 미래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 기사를 본 스티브 잡스의 반응이 궁금하다. 만약 “애플 제품 써보니까 훌륭하더군요. 마이크로소프트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는 인터뷰가 나왔다면 스티브 잡스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을 것임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유형준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