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컨버전스적(융합) 동물이다.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손이 자유로워지고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인간은 자연과 동물, 인간 스스로와 융합을 해왔다. 돌과 나무로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만들고 불을 인간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행위와 말과 글, 화약, 나침반, 인쇄술, 종이, 바퀴를 만들고 이용하는 행위, 이 모든 것이 컨버전스의 산물이었다. 컨버전스 능력은 오랜 역사가 흐르면서 역사, 철학, 언어, 논리, 과학기술 등으로 세분화됐다.
15세기 콜럼부스, 마젤란 등이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문명의 충돌(컨버전스 빅뱅)이 일어난다. 이 시기를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고 부른다. 대항해시대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상선이 미지의 대륙을 찾아 새로운 무역항로를 개척했다. 나침반, 항해술, 선박 제조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무역자본이 성장했고 그 덕분에 인류는 18세기 산업혁명을 맞게 된다.
IT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지식 집약적인 결정체다. 수천 명이 수백 년 걸려 이뤄야 할 계산을 단 몇 초 만에 완성시킨다. 인간을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많은 잉여시간을 제공했다. 주5일제 근무를 정착시키게 된 것도 IT를 통한 생산력 증대 덕분이다.
IT가 고용을 줄인다는 소리가 한동안 유행했다. IT가 고된 육체노동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했지만 그로 인해 기업이 고용을 줄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뼈를 갉아먹는 육체노동에서 인간을 탈출시켰지만 인간을 일로부터 소외시켰다는 비판을 역으로 받고 있다.
IT는 고된 육체노동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IT가 도입되면 회사 생산성은 높아지고 힘든 노동은 줄어든다. 물건을 만들고 구분하는 일, 이를 실어 나르는 일이 쉽고 빠르게 해결된다. 육체노동을 줄인 것은 분명하다. 이를 고용감소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좀더 큰 틀에서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는 농촌에서 모 이양기를 쓰거나 컴바인을 쓰지 않고 수십 명이 매달려 모내기를 하고, 벼 베기, 탈곡을 하는 것을 `고용이 늘어났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댐 공사현장에서 수만 명이 흙을 삽으로 뜨는 북한의 천리마 운동을 고용이 늘어났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혹독한 노동이 늘어난 것뿐이다. 질 낮은 고용이다.
IT가 고용을 줄인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IT는 고용을 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고용을 만들어 낸다. 바로 질 높은 고용이다. IT는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 기술과 융합하면서 인간의 노동을 진화시킨다. 스마트한 노동이 늘어난다. 적게, 편하게 일하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질 높은 고용 말이다. 집에서 회사 일을 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게임을 만들고, 인간의 창의력을 상품화하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IT가 굴뚝산업과 새로운 컨버전스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IT는 지금 굴뚝과의 컨버전스를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을 찾는 `컨버전스 빅뱅(IT대항해)`이다. 질 낮은 고용이 줄어든다고 욕 하지 말고 IT가 더 많은 산업을 창조하도록 지원하는 게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