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터넷 2010] 자율규제는 개방의 필요조건

“섹스나 포르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원한다면 안드로이드폰을 사면 될 것이다.”

지난 4월 외신을 통해 회자됐던 애플 CEO 스티브 잡스의 발언이다. 애플리케이션 사전 심의를 하지 않는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을 겨냥한 것으로, 이후 두 기업간 설전이 벌어지면서 상당한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방과 규제 정책’ 관점에서 보면 두 기업의 설전이 좀 다르게 읽힌다.

앱 사전 심의를 철저하게 하는 애플과 사전 심의를 일절 하지 않는 구글. 글로벌 모바일 앱 마켓의 양대산맥인 이 두 기업의 정책은 철저하게 ‘자율적’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정부가 규제를 해서도 아니다. 애플은 사전심의를 통해 좀 더 걸러진, 애플 기준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비즈니스 전략에 맞고 구글은 문호를 활짝 열어놓고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걸러지게 하는 것이 기업 철학과 방향성에 더 맞을 뿐이다. 즉 철저하게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기업이 선택을 자유롭게 하면 이용자도 이렇게 다양해진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

그동안 우리나라 인터넷 규제는 이 같은 기업 선택권, 이용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경을 초월한 유무선 인터넷 시장 활성화, 각종 웹 기술과 개발도구 및 소스의 개방이 가속화할수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는 자율규제가 아니고서는 실효성을 가지기 힘들다.

특히 새로운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오픈마켓 진출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애플과 구글의 심의 정책은 정부 규제보다 더 무섭다.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한 개발자는 “구글이나 애플에 유해한 앱을 올려서 소위 ‘찍히게’ 되면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기가 힘든 구조”라고 토로했다. 다시 말하면 정부 규제보단 플랫폼 사업자들의 자율규제가 오히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유무선 인터넷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서비스나 콘텐츠 규제체계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황성기 한양대 법대 교수는 “매체융합 환경의 경우 게임과 기타 정보 및 콘텐츠 서비스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유무선 인터넷 소셜미디어의 경우 게임물에 대한 심의권한을 갖고 있는 게임물등급위원회와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심의권한을 갖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에서 누가 주도할 것인지가 불명확하다”며 “자율규제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당장 자율규제를 전면 도입하기는 어렵겠지만 변화하는 시장 환경을 고려한 각종 규제체계를 다듬는 게 우선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민수기자 mim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