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개발도상국가에서 ‘모라토리엄(채무 이행 연장)’을 선언하면 그 나라의 부채를 탕감해주거나 상환 날짜를 연기해주고는 했죠. 그런데 이번 것(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은 모기지론(주택 담보 장기 대출)이 원인이었잖아요. 부채를 국가가 책임진 게 아니라 개인(시민)이 고스란히 떠안았죠.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은 겁니다.”
경제와 시장 규제에 밝은 관료로서 장관까지 지낸 이가 지난 16일 저녁 식탁에 올린 요즈막 세계 경제 정세다. 그는 “이런저런 변수가 너무 많은데 우리(한국)는 너무 낙관적”이라고 찬을 곁들였다.
실제로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날(현지시각 15일) 아일랜드가 크게 흔들리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떨게 했고, 공포가 유럽 전체로 확산됐다. 17일(현지시각 16일)에는 이 소식에 뉴욕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온 세계가 2008년 말 이후로 그렇게 늘 긴장했는데, 한국은 묘수라도 숨겨둔 것인지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이 책을 지은 나카타니 이와오가 2008년 11월에 말했듯 이미 “세계 경제는 대불황의 국면으로 들어섰고, 이 혼란을 수습하려면 아마도 수년에 걸친 조정이 필요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책 제목처럼 이미 ‘자본주의가 무너졌고’ 지금은 다만 겨우겨우 땜질하며 버틸 뿐일 수도 있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였던 지은이가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안녕’을 고하고, 참회하며, 미국 추종형 구조개혁론으로부터 전향한다고 선언했을 만큼 여러 쪽에 걸쳐 깊이 생각해볼 게 많다.
예를 들자면 “미국 경제가 세계 제1이 된 것은 뉴딜정책 이래 정부의 적절한 기업 통제, 사회복지정책, 노사협조노선이 있었기 때문(265쪽)”이었다. “반드시 시장원리만의 성과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시장원리 우선의 ‘구조개혁’으로 일본의 경제나 사회가 타격을 입었다(제7장).”
또 덴마크 사람들이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하지 않는 이유(338쪽)는 무엇일까. 옛 “시장주의로는 이해할 수 없는”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경제의 발전 동력을 꼭 짚어 보시라.
“자본주의가 옛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로 인한 거대시장 개방과 정보기술(IT)의 비약적 발전으로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괴물’로 변했다(368쪽). 괴물이 만들어낸 ‘상처’는 너무나 깊고 다양한데, 여전히 풀어져 있다. 이 괴물이 자신의 지나친 행동(2008년 금융위기)으로 상처를 입었다. 지금이야말로 괴물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우리(제도)를 만들 호기일지도 모른다(381쪽).” “지금 글로벌 자본주의에는 중앙은행이나 강제력을 가진 정부와 같은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괴물에게 천적(외부 강제력)이 없는 것이다. 이를 전 세계 사람들이 인식하면 괴물의 움직임을 구속할 효과적인 족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382쪽).”
한편 미국 주도 세계 모델이 붕괴하는 오늘날 “일본적 가치관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진다(310쪽)”는 지은이의 확신이 기자를 ‘일본 알아보기’로 이끌었다. 손에 한도 가즈토시의 ‘쇼와사(1926~1989년)’를 들었다.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 이남규 옮김. 기파랑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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