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50년간 늦은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기술입국을 이뤄냈다. 특히 정보기술(IT)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으며 인터넷 등 정보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 전 세계 휴대폰의 30% 이상을 우리나라가 만들지만 제대로 된 운용 소프트웨어 하나를 갖고 있지 못하고, 싸이월드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누구보다도 먼저 시작했지만 페이스북에 국내 시장마저 넘겨줄 위기를 맞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 기저에 우리 사회의 문화지체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사회에 진입함에 있어 우리의 기술은 이미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우리의 문화수준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중문화와 표준을 중시하는 획일화, 경쟁만을 강조하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포획되어 있고, ‘하면 된다’는 밀어붙이기식 리더십이 통용되는 등 산업사회의 문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문화지체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과 제도의 미숙이라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지금의 세계는 자유로운 의식, 다양한 가치관의 조화, 협력을 강조하는 공동체 정신 등이 중요하다. 이제는 기술이 이러한 새로운 시대정신과 접목되지 않고서는 세계 시장을 차지할 수 없다. 기술과 문화가 수레의 양쪽 바퀴가 돼 제품과 서비스의 격을 한 단계 높여야만 애플과 같이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회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소프트웨어는 철저한 관리기법과 전략적 사고, 탄탄한 협력모델, 전문가의 존중, 자유롭고 다양한 문화가 필요한 산업이다. 그래서 혹자는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기법이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제시한 4가지 요소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경험의 부족도 원인이겠지만 우리의 기업문화가 하드웨어에 경도돼 있는 등 성숙되지 못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기업문화도 결국 우리 사회의 문화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서비스산업도 글로벌 시장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 도전하지 않고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는 기업의 태도가 문제이나, 언어의 제약과 이에 따른 글로벌 마인드의 부족이 더 큰 원인이다. 글로벌 서비스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각을 갖춘 리더와 지구촌 곳곳의 문화에 정통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 특히 요즘 서비스산업의 화두가 ‘개방형 생태계’라는 플랫폼이라 더더욱 성숙한 문화의 뒷받침이 필요한 실정이다.
며칠 전 성공리에 마무리된 서울 G20정상회의가 남긴 것은 우리나라가 이제 글로벌 무대의 주역이라는 메시지를 만방에 알린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한 글로벌 무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의 제약을 극복하고, 성숙한 문화에 기초한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함양하며, 기술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를 성장의 기반으로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사람과 사회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심화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자율적인 문화가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전환 없이는 소프트웨어, 디지털 콘텐츠 강국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 sjkwak@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