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력수급 안정화를 이유로 가스냉방 보급 활성화라는 카드를 꺼내든 지 8개월이 지났다. 가스냉방을 보급하는 것은 여름철 전력수급을 안정화시키고 겨울철에 집중된 가스 수요를 분산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달 국감에서 지적됐듯이 연간 3000억원이 넘는 경제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보급은 신통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8개월간의 보급 실적을 바탕으로 경제적 효과와 실효성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가스냉방에 대해 2회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3월 19일 가스냉방 보급을 위해 신규 예산 50억원을 책정하고 보급 확대를 추진 중이다. 가스냉방기기 설치비 보조금을 최대 15% 지원하고, 융자 지원을 확대해 설치비 부담을 줄여준다는 게 골자다. 냉방용 가스의 소매공급비용도 10% 가량 인하해 운영비 부담도 줄여주기로 했다.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가스냉방 보급 실적은 미미하다.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설치된 가스냉방기기(가스히트펌프, GHP)는 429대에 불과하다. 정부 예산도 50억 원 중 가스냉방기기 설계와 설치에 18억원 정도만 사용됐을 뿐이다. 설계 및 시공에 걸리는 기간 6~12개월을 감안해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지경부는 올해 가스냉방 보급지원 예산으로 50억원을 책정한데 이어 2011년 150억원으로 세배난 늘릴 예정이지만,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 등 관련 법적 근거 미비로 실제 시행은 미뤄지고 있다.
정부의 가스냉방 보급 활성화 정책이 약발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먼저, 기존 전기히트펌프(EHP)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GHP를 설치하면 전기요금보다 가스요금이 싸기 때문에 EHP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제품은 효율이 떨어지고, 일본 제품은 효율은 높지만 환율 상승으로 가격 부담이 크다. 실제 보급률은 8대2 정도로 EHP의 절대적 우세다.
둘째로 큰 덩치와 소음 문제가 걸림돌이다.
전기 냉방기기와 달리 차지하는 공간이 커 사실상 소형 건물에 설치하기가 어렵다. 또한 엔진 소리가 커서 이웃으로부터 민원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문제로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가스공사조차도 보급 확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가스공사 한 관계자는 “전력피크 분산과 여름철 가스 수요 증대라는 의도는 좋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냉담하다”고 지적했다. 냉방용 가스요금으로 도매 원료비의 75%만 받지만 전기요금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셋째로 가스요금이 불확실한 것도 보급이 미뤄지는 이유다.
전기요금의 경우 정부에서 통제를 하고 있어 안정적이지만 가스요금은 변동성이 있고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원래 GHP의 경우 학교를 대상으로 보급 확대를 꾀했지만 정부의 학교 전기요금 할인으로 오히려 EHP의 수요 증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기존 EHP업계의 거센 반대도 보급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지난 한국가스공사 국감에서 “경제효과만 3000억원에 달하는 가스냉방이 EHP업계 반대에 밀려 대형건물 가스냉방 의무화 관련 법적 근거를 지경부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 의원은 국감에서 “전기냉방기기업계를 비롯해 한국냉동공조협회, 한국전자정보산업진흥회, 대한설비공학회, 한국전력, 일부 대기업 등이 강력한 반대 의견을 피력해 지경부가 입장을 굽혀 개정작업이 보류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입법 예정이었던 가스냉난방 설치 의무화 확대 법안이 미뤄진 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며, 공공기관이나 대형 건물 중심으로 보급돼야 한다”며 “업계에 전문가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현재 GHP의 국산화율은 매우 낮은 편이라 수입업체의 배만 불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EHP는 삼성과 LG 등 국내 제조업체들이 있지만 GHP를 제조하는 국내 기업은 거의 없어 LS엠트론이 거의 유일한 상황이다. 90% 가량의 GHP는 일본 아이신과 산요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유창선·최호기자 yud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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