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시스템SoC 창업 보육실을 가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누리꿈스퀘어 비즈니스타워 6층에 위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시스템반도체진흥사업단 창업보육실. 이곳에는 미래의 퀄컴이나 미디어텍을 꿈꾸는 신생 유무선통신 관련 반도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반도체자동화설계(EDA)툴 등 총 17개 기업이 입주, 제품 개발에 한창이다.

이곳에 입주한 성진아이엘(대표 김용우)은 무선주파수(RF) 반도체 업체로 국내 대기업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4세대(G) 이동통신 기술인 롱텀에볼루션(LTE) 기술을 대기업과 공동으로 개발 중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트라바(대표 강인원)는 광전송 기술 전문 업체로, 영상·음성을 동시에 전송하면서 해상도는 구리선의 10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전송속도를 초당 1테라(Tbps)까지 낼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팹리스 기업들이 이곳을 거쳐가다 보니 설계 교육을 담당하는 회사도 있다. 이디에이엘리텍의 김정대 사장은 이곳 팹리스 업체들에게 컨설팅과 교육을 제공한다. 케이던스·시높시스 같은 EDA툴 업체에서 몸담았던 경험을 토대로 반도체 설계 강의도 한다.

여러 업체가 모이다 보니 집적 효과도 크다. 입주사 사장들은 협의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기술 교류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이 업체들은 입주 신청서를 내고 심의위원회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보육실에 들어왔다. 일단 2년간 창업 보육 지원을 받고, 2년 후 한번 더 심사해 성장 육성 지원을 3년간 더 받을 수 있다. 이곳을 거쳐간 팹리스 업체는 총 88곳으로, 코아로직·엠텍비젼·넥스트칩·다믈멀티미디어 등 코스닥에 상장한 팹리스 업체들도 상당수다. 성공사례가 다수 있는 만큼 입주업체들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김용우 성진아이엘 사장은 “전 직장에서 RF칩을 양산한 경험도 갖고 있다”며 “대기업에서도 관심을 가질 정도니 우리 회사의 기술력에는 자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포부 이면에는 극복해야 할 ‘거대한 벽’이 현실을 짓누른다. 지식경제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에 따라 ETRI는 사무실·설비와 각종 장비, 필요한 설계자산(IP)을 제공하지만 제품 개발 비용이나 양산 비용은 지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기업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조금씩 나오던 개발 지원 예산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국책과제도 매출 실적과 양산 경험 위주로 진행돼 신생 기업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1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시제품 제작 비용은 신생기업에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투자자들이 필요한데 투자는 얼어붙었다. 강인원 트라바 사장은 “벤처캐피털(VC)에서 몇 번 왔다 갔지만 반도체 쪽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 사업을 진행하는 ETRI 측에서는 “정부 재정에도 한계가 있어서 개발 비용을 다 대주기는 힘들다”며 “실리콘밸리에서처럼 신생 벤처를 키울 수 있는 앤젤투자자들이 국내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