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니가 샤프와 공동 추진해왔던 10세대 LCD 패널 합작 생산 계획을 사실상 접는 대신 저가 대만산 LCD 패널 구매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세계 5위권 LCD 패널 업체인 샤프의 입지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여 일본 내에서는 첨단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LG전자에 이어 3위권 LCD TV 업체인 소니가 LCD 패널 구매 전략을 급선회함에 따라 한국과 대만 업계에 미칠 파장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소니, 결별 수순=최근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소니는 오사카현 사카이에 위치한 샤프 10세대 LCD 패널 공장의 합작 운영 계획을 철회할 예정이다. 대신 소니는 대만으로부터 사들이는 TV용 LCD 패널 비중을 크게 높이기로 했다. 현재 소니가 구매하는 LCD 패널 가운데 30% 정도인 대만산 패널 비중을 5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소니는 샤프의 10세대 LCD 패널 생산법인 지분을 내년 4월까지 최고 34%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포기했다. 지난해 7월 10세대 LCD 라인 합작 투자 및 공동 운영 협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된 양사의 제휴는 불과 1년 남짓만에 무산된 셈이다. 다만 소니는 이미 투자한 7%의 지분은 유지하기로 했다.
◇배경=소니의 결정은 엔고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전 세계 TV 시장 수요도 둔화되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라는 게 현지 외신의 분석이다. 올 회계연도만 해도 소니는 TV 사업에서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향후 저가형 대만산 LCD 패널 조달 비중을 절반이나 대폭 늘리겠다는 것도 현재 ‘내 코가 석 자’인 탓이다. 여기다 자국 내 LCD TV 시장은 친환경 가전 보조금이 사라지는 내년에는 더 위축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 같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 소니가 한국의 삼성전자와 다시 협력 수위를 높이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와 ‘S-LCD’라는 합작법인을 통해 7·8세대 LCD 패널 합작 투자를 단행했던 소니는 10세대에서 샤프를 선택했다. 최근 소니와 삼성전자가 11세대 합작 투자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풍문도 이런 배경인 것으로 풀이된다. 가뜩이나 LCD TV 사업이 어렵고, 삼성전자라는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 소니가 굳이 샤프와 협력 관계를 이어갈 부담을 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망=당장 샤프로선 LCD 패널 사업에서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10세대 LCD 라인이 42인치 TV용 LCD 패널 기준 연산 1300만장을 생산할 수 있지만, 소니가 대규모 물량을 사주지 않으면 판로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샤프는 현재 LCD 패널 시장 점유율 10% 정도로 한국의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대만의 AUO와 CMI에 이어 5위권에 불과하다. 세계 처음 10세대 라인을 가동하면서 메이저로 부상하려 했던 구상이 물 건너갈 수도 있는 셈이다.
소니와 삼성전자의 11세대 LCD 라인 합작 투자에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일단 이번 결정으로 양사의 제휴는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터져나올 경우가 문제다. 비록 TV 사업이 침체됐다 해도 소니가 샤프를 버리면서까지 첨단 제조업의 공동화를 심화시킨다거나, 더욱이 대만과 한국을 파트너로 삼으려 한다는 일본 내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