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게임 산업에도 적기 조례(赤旗條例)를 씌우는가

지난 1865년 영국 의회는 세계 최초의 교통법인 적기 조례(赤旗條例, Red Flag Acts)를 제정했다. 적기 조례는 자동차 관련법의 효시라는 점 이외에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바로 영국 자동차 산업의 맹아를 밟았다는 사실이다.

산업 혁명의 발상지 영국에서는 1838년 자동차 엔진의 기초인 실린더 내연기관이 발명된다. 거리에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면서 운송 혁명이 일어났지만, 마차나 행인들과의 교통사고가 이어졌다.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으며, 자동차의 폐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 적기 조례다. 적기 조례라는 이름은 그 법의 내용에서 비롯한다. 적기 조례는 △한 대의 자동차에 세 명의 운전자를 태운다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마차를 타고 자동차 앞에 가면서 통행인들에게 경고한다 △최고 속도는 마차보다 빠르지 않게 6.4㎞ 이하로 낮추고, 시가지에서는 그 절반인 3.2㎞로 제한한다는 조항으로 이뤄졌다.

이 법은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자동차를 한 대 몰려면 4명의 인력에 마차까지 필요했다. 당시 자동차는 3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제한 속도는 빠르게 걷는 수준이다. 그나마 도심에선 걷는 게 빨랐다.

자동차가 마차에 비해 비싸고 번거로우며 느리기까지 하니 누구도 원치 않았다. 적기 조례는 이후에도 30년 이상 존재했다. 그 결과 140년이 넘도록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여전히 중심에서 떨어진 변방을 전전한다.

적기 조례처럼 기술이 새로운 산업을 낳을 때 기존의 질서와 충돌하는 사례는 종종 일어난다. IT 기술 혁명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 21세기에는 더욱 빈도가 잦다. 현재 IT 업계, 특히 게임 산업의 발목을 잡는 적기 조례는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전국의 청소년들이 밤에 몇 시간 게임 안한다고 해서 게임 업계 매출에 큰 영향은 없다”라며 청보법 개정안의 당위성을 역설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게임 업계는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규제가 온라인게임 종주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황당함에 반발한다.

올해 게임 수출은 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게임은 수출액은 80% 이상 이익이다. 이 정도 이익이 남으려면 중형차를 30만대는 수출해야 한다. 게임은 무역 수지 흑자액도 1조5000억원을 웃돈다.

단지 산업적 논리만이 아니다. 이미 셧다운제는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도입 후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법과 콘텐츠, 그리고 청소년 전문가까지 10명 중 7명이 청보법 개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다수의 학부모들은 청보법 개정안에 찬성한다. 평화로운 우리 가정에 게임이라는 바이러스가 들어와 순진한 아이들을 감염시켰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가부와 일부 의원들은 민심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등에 업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가정은 과연 평화로운가. 우리는 아이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가. 정부는 게임의 폐해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에 관심이나 있는가. 정부는 규제만능주의 말고는 대안이 없는가.

이 질문에 우리 사회가 답하지 않는다면 게임 산업은 21세기판 적기 조례에 묶인다. 모처럼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도 함께 가라앉게 된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