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항상 핵심기술 유출 위협에 시달린다. 경쟁기업에 도용 당하기도 하고 대기업이 대·중소 협력을 미끼로 접근한 뒤 유사한 기술로 특허를 내기도 한다. 내부 인력이 이직하며 사내 기밀을 유출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가 이같은 점을 고려해 도입, 시행하고 있는 제도가 ‘기술자료 임치제도’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제품의 설계도, 사양서, 생산방법, 영업비밀, 소프트웨어 소스코드 등의 핵심 기술 자료를 제3공인기관인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보관함으로써 기술유출을 방지할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에도 중소기업의 파산·폐업 등이 발생해도 해당 임치물을 이용해 납품받은 기술을 계속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이 제도는 핵심 기술이 외부로 유출됐을 경우에도 해당 임치물을 이용해 개발 사실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유출 방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기술임치제 이용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시범운영한 2008년 26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누적기준으로 146건으로 급증했고, 올해 11월22일 현재 430건에 달했다. 연말에는 500건 돌파가 예상되며 내년에는 1500건에 다다를 것으로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측은 기대하고 있다.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속도는 늦다. 정부는 지난 9월 29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의 일환으로 기술자료 임치제를 권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후속 대책은 미흡하다. 당초 400개인 기밀금고를 3000여개로 늘리기로 했지만 내년 예산에 책정된 금액은 고작 5억원 정도다. 선진국이 기술임치제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를 민간 자율에만 맡긴 게 아니라 정부기관에서도 이를 유도한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국내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대 등 정부의 후속조치가 차질없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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