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 어느 날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을 찾아간다. 그는 꿈에 그리던 신대륙 탐험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장기간 항해할 배와 인력, 각종 물품 등에 대한 지원이 절실했다. 각국 왕실은 그의 후원 요청을 거절했지만 제국건설의 꿈을 가졌던 이사벨 여왕은 신대륙을 식민지로 제공하겠다는 콜럼버스의 제안에 흔쾌히 후원을 결정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카스티야는 에스파냐 왕국으로 성장했고,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된다.
최근 과학기술계에서는 색다른 정치운동이 일고 있다. 과학기술에 관심조차 없는 정치인 탓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 소통하고 설득해 우리나라 기초과학을 강화하고 국제과학도시를 조성하는 꿈을 입법 형태로 실현하겠다는 움직임이다. 국회의원을 개별 접촉해 정책을 제안하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였다. 의원회관을 빌려 의원들을 초청해 과학기술 현안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벌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지난 8일 여야가 난투극을 벌이며 여당이 단독 처리한 새해 예산안과 관련 법안에는 지난 몇 년간 과기계를 애태웠던 두 가지 법안이 포함돼 있었다. 바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상설 행정기구로 바꾸는 ‘과학기술기본법’과 기초과학 연구기반 조성 및 집적 단지를 만드는 ‘과학비즈니스벨트법’이었다. 직접 정치를 해서라도 꼭 이뤄내고 싶었던 과학자들의 꿈이 한순간에 실현된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물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마음은 씁쓸했다. 정치운동에 참여했던 한 과학자는 “정치인과 손을 잡아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해서 나갔지만 그날의 국회 모습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일평생 연구만 하던 그의 눈에 비친 국회의 모습은 원칙도 없고 너무도 거칠고 비과학적이었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과학자들이 연구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섰을까. 얼마나 답답했으면 정치를 통해 과학의 꿈을 이뤄야겠다고 했을까 이해도 가지만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물을 원했던 것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의 정치적 후광에 힘입어 신대륙 발견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뤘지만 결국 버림을 받고 쓸쓸하게 최후를 맞았던 모습이 왜 자꾸만 교차되는 걸까.
경제과학팀 정지연차장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