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수건 쥐어짠다. 귀에 인이 박히듯 비용 절감을 외치더니 화장실 휴지도 안 사다놨다. 이러다 쓰던 볼펜도 뺏어가겠다. 다른 회사는 노천카페에서 햇살 받으며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제주도로 워크샵을 떠난다는데, 우리 회사는 고작 씁쓸한 자판기 커피 한잔에 비상계단에서 피우는 담배 한대가 전부다. 부잣집 외상보다 비렁뱅이 맞돈이 좋다고 향후 비젼보다 당장 복리후생이나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매일 죽는 소리만 하는 회사, 이제 듣기도 지친다.
‘따르릉 따르릉”하는 사무실 전화 벨 소리를 ‘10만원, 10만원’으로 바꿔 녹음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신문전면 광고한 날 걸려오는 전화는 한 통화당 평균 10만원이 투자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원가가 우리 존재 자체에 들어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내가 받는 월급이 회사가 내게 준 전부가 아니다. 내 월급의 세배 이상이 이미 내게 투자되었다. 4대보험 뿐 아니라 사무실 유지비, 사무용품비, 기타 지원비 등등 내게 들어간 원가 개념을 갖자. 내가 회사에 정정당당해지려면 내 월급의 다섯배는 부가가치를 올려야 회사가 나를 제주도에라도 보내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연봉을 분할계산하면 임원급은 1분당 800원, 사원급은 1분당 300원씩이다. 그 시간을 허비하면 그 돈이 날라가는거다. 초라하게 피우는 담배도 담뱃값만 들은 것 같지만 내가 나가서 잡담한 10분의 시간, 3천원이 투자된 것이고 커피 마시느라 20분을 썼다면 6천원을 길에 흘린 것이다. 받을 것만 생각하며 억울해 하기보다 줄 것에 대한 부채감을 갖자. ‘되면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면 된다’라는 사람이 있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 열심히 일할 것 같지만 열심히 일해야 좋은 직장에 가게 된다.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으면서 여기를 불평하느니, 잘 준비해서 에스프레소 주는 회사로 스카우트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