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망 중립성

‘중립(neutrality)’이란 이해당사자 사이의 분쟁에 관여하지 않고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중립이라는 용어는 합리, 객관, 평등이라는 용어를 연상시키며, 비교적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지정학적 위치와 그로 인한 이념의 대립으로 약소국 지위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중립이라는 용어는 한 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영세중립국의 영향이 컸을 터다. 이 때문일까. 어린 시절 전쟁놀이에서 상대편의 공격을 받을 때 밑도 끝도 없이 ‘중립’을 외치면 자유로워졌던 기억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12월 초 미국 FCC는 찬반투표를 통해 미국의 망 중립성(Net-Neutrality) 법안을 통과시켰다. 망 중립성이 입법 차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이 2006년이니까 5년 만에 결과물이 나온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당사자 간 논란은 남아 있다.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원회도 새해에는 망 중립성에 대해 보다 꼼꼼하게 검토하겠다고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혔다. 올 한 해 포럼을 운영하면서 그야말로 ‘중립’을 고수해 온 방통위로서는 이제 ‘망 중립성’에 대해 어떤 방침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중립’이라는 용어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망 중립성’이란 용어 자체가 찬성하는 쪽은 ‘선’, 반대하는 쪽은 ‘악’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같은 용어의 ‘비(非)중립성’이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는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는 배경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망 중립성 논쟁은 현재의 망 운용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망 운용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자국 인터넷사업자들의 네트워크사업자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최근 유럽과 일본에서는 자국이 집중하는 사업 영역에 따라 ‘중립’의 의미를 ‘효율’로 해석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새해 ‘망 중립성’이란 용어가 치우침 없고 이해하기 쉬운 분명한 용어로 정리되길 기대해 본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