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미국에서 `베이비 부머(Baby boomer)`의 은퇴가 본격화된다.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에 장기적으로 큰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비 부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6년부터 1965년까지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그 수만 무려 7800만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26%나 된다.
이들 중 가장 먼저 태어난 1946년생들이 새해에 만 65세가 된다. 미국의 평균 은퇴 연령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조사연구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앞으로 19년 동안 매일 1만명 이상의 베이비 부머가 은퇴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이 2014년 65세 노인 비중이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로 나가고 2033년에는 그 비중이 20%를 넘어서면서 일본 같은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비 부머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경제를 이끌어온 주역이었다. 이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돈을 썼다. 이들이 은퇴한다는 것은 곧 미국 역사상 가장 열광적인 소비자들이 더 이상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미국 소비가 크게 위축되리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비 부머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다. 이미 소비로 70%이상 써버렸고 남은 돈으로 저축하기보다는 빚을 더 얻어 주식과 집을 사들였다.
그러다 금융위기로 재산을 날렸다. 미국경제정책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 부머의 평균 자산은 2004년 31만달러에서 올해 16만달러로 반 토막이 났다. 3명 중 2명이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상태다. 집값보다 모기지 부담이 더 큰 사람도 많다. 의료비용도 만만치 않다. 65세 여성의 경우 보험료로 평균 21만3000달러나 부담해야 한다.
베이비 부머가 이젠 자기 하나 먹고살기도 어려운 처지가 된 것이다. 맥킨지앤드컴퍼니도 조사를 통해 이들 중 3분의 2는 은퇴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AP는 베이비 부머는 은퇴를 미루려 하지만 10%에 육박하는 실업률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55세 이상 구직자들의 무직 기간은 45주 이상에 달해 청년 구직자들에 비해 12주나 길다. 62세에 이른 베이비 부머 가운데 4명 중 3명은 지급액이 줄어드는 것에도 불구하고 3년 앞당겨 사회보장을 신청하고 있다.
14조4000억달러(2009년 기준)에 달하는 퇴직연금도 경기침체로 제대로 받기 어려워졌다. 고용보험납부조사단체(EBRI)에 따르면 올해 사기업에서 일하다 은퇴한 근로자 중 15%만이 제대로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0년대엔 39%가 받았던 것에 비하면 크게 하락한 것이다. 42%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가입한 주식연계형 퇴직연금의 10년간 수익률은 겨우 4%에 불과하다.
베이비 부머의 은퇴는 미국 재정에도 큰 부담이다. 노동력 감소로 세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은퇴자들을 위한 사회보장비 지출이 대폭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회예산국(CBO)은 현재 대로라면 앞으로 25년간 베이비 부머의 은퇴로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관련 재정 지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지속 불가능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버락 오바마 정부는 퇴직연금 수령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점진적으로 69세로 연장하는 재정 감축안을 내놓았지만 의회에서 부결됐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 재정적자가 급증하는 것을 물론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진다"며 "이런 모습은 대영제국의 말로와 비슷하다"고 경고했다.
[박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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