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소통, 열림과 닫힘

강정환 사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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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힘은 자연·건축·인문·예술에 두루 적용되는 미학의 주제기도 하다. 우리는 문을 통해 열림과 닫힘을 확인할 수 있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소통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상대방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고 또 닫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소통에도 열림과 닫힘이 있다. 소통을 닫게 만드는 경우를 살펴보자. 상대방에게 칭찬이나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긴장하거나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또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주지 않거나 끝까지 듣지 않는 경우, 상대방은 무시당했다는 좌절감과 함께 분노를 일으킨다. 질문을 받고 상대방이 ‘예, 아니요’라고 답변할 경우 역시 대답하고 나면 다음에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닫힌 대화를 시작하면 상대의 마음도 차갑게 얼어붙어 결국 닫히게 된다. 이와 정반대로 소통을 열어갈 수 있다. 내가 먼저 칭찬하거나 인정해 준다. 상대방은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한 느낌으로 마음을 열게 된다. 또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 주면, 말을 많이 하게 되어 속이 후련하다고 느낄 것이다. 생각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즉흥적이지 않고 깊이 생각한 후 자유롭게 대답함으로써 내면의 이야기를 잘 담아 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내가 무심코 내뱉는 말이나 질문 또는 나의 듣는 태도에 따라 상대방을 기분 좋게 대화에 몰입하게 만들 수 있고, 불쾌한 감정의 여운을 갖고 끝낼 수도 있다. 내가 먼저 열어 내 안에 상대방의 공간을 만들어 주면, 자연스럽고 기분 좋게 소통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을 내 가슴에 안고 내 마음 안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하기 때문에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소통능력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많이 배웠다는 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돈이 많다는 이유로 충분할 것일까. 아니면 자만심 때문인가. 명예욕 때문인가. 내 마음이 닫히면 상대방이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상대방에게 비추어지고 있는 소통역량이 자신의 생각과 기대수준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칭찬을 하루에 과연 몇 번이나 하고 있는지, 긍정적인 단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상대의 눈빛을 마주보면서 경청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열린 질문을 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소통을 시작하려면 냉정하고 가혹한 자기진단을 통해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다.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반복해 몸에 익혀야 한다. 제대로 소통하려면 소통기술을 익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마음을 비워야 나를 열 수 있고 그래야 상대도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열린 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부터 비워야 한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 관점도 내려놓아야 한다. 막상 내려놓으려니까 기득권을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깝기만 하다. 두려움도 앞선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즘 불통의 현장을 많이 목격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열린 소통의 세계에 한 걸음도 들여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뼛속마저 비웠듯이, 열린 소통은 나 자신부터 비워 ‘통’ 하는 소리가 날 수 있어야 한다. 정작 닫힌 소통을 열어 가려면, 내 마음부터 비우고 상대방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열어 갈 것인가.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왕도가 따로 없다. 내 마음과 내 입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리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강정환 통통 대표이사 tong@tongtong88.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