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업무를 시작하는 첫 날 아침, 대부분의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기업들은 시무식을 갖는다. 지난 한 해를 평가하고 새로 시작하는 한 해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공유하고 각오를 다지는 자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3일 전 국민들에게 드리는 새해 특별연설을 했다. 정부를 대표해 국민들과 일종의 시무식을 한 셈이다. 올해는 안보와 경제를 두 축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저력을 바탕으로 세계 일류국가로 단숨에 도약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해마다 정례적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생방송 신년연설을 하는 만큼 의례적인 절차쯤으로 치부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이 대통령의 신년연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여느 해보다 더 절실하고 안타까웠을 것 같다.
지난 한 해 우리 국민들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한국전쟁 이후 지난 60년간 유지됐던 평화체제가 하루아침에 깨지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음을 절감했다. 예기치 못한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연말연시 휴일도 없이 6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을 살처분하는 현장을 눈물로 지켜봐야 했다.
예년보다 새해 보신각종 타종 행사 인파와 시청 앞을 밝히고 있는 형형색색의 트리를 구경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은 왜일까? 아마 연말을 즐기기엔 전 국민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이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G20정상회의 성공개최의 의미를 다시금 강조했다. 미국, EU 등은 물론 세계시장의 3분의 2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공로를 치켜세웠다. 공정사회 구현과 청년 일자리 창출, 녹색성장 등 신성장동력 육성에 이르기까지 올해 추진할 당면 과제도 일일이 나열했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 연설을 들으면서 우리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난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한마디 위로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한마디 한마디를 새기면서 희망의 끈을 찾고 싶었을 국민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문득 궁금해진다.
정지연 경제과학팀 차장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