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공학한림원이 6·25전쟁 이후 60년간 대한민국을 빛낸 100대 기술을 선정해 발표했다. 건설·환경 분야 목록에는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의 이름이 올라 있다. 63빌딩 높이의 세 배가 넘는 세계 최고층(828m) 빌딩을 완공한 주역은 삼성물산이다. 수주액은 5억달러. 1965년 현대건설이 국내 최초로 태국의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을 때의 54만5000달러보다 무려 1000배 가까이 증가했다.
2005년 사상 처음 100억달러 수출을 돌파했던 우리나라의 해외 건설 총 수주액이 2010년 700억달러 고지를 찍었다. 연초 정부 목표치 6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현장에서 외국 감독관에게 상세설계까지 배워가며 공사하던 때와 비교하면 자축해도 좋을 성장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 후발주자들도 바짝 따라붙고 있는데다 선진국들이 이미 보다 새롭고 원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이제 규모와 위상에 걸맞은 진정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할 때다. 노동집약형 시공기술 분야를 넘어, 기본설계 및 프로젝트 관리를 두루 관장하는 지식집약형 종합 컨설팅 영역으로 도약해야 한다. 부르즈 칼리파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이 챙긴 것은 총발주비 15억달러 가운데 3분의 1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프로젝트 종합 관리를 맡은 영국계 엔지니어링 업체 하이더와 미국의 설계업체 솜에게 돌아갔다.
엔지니어링 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엔지니어링이란 개별적인 전문기술을 유기적이고 조직적으로 운영,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하는 과학적 기법을 말한다. 건설·플랜트·조선·원전 등 대규모 생산설비나 사회기간시설물을 다룰 때 특히 유용한 개념이다.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건물의 기획부터 개념설계(FEED), 프로젝트종합관리(PMC), 유지·보수 등을 맡는 쪽이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이 알짜배기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엔지니어링기술 확보가 필수다.
엔지니어링은 설계·관리를 최적화해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다양한 기술과 시스템을 복합화함으로써 기존 제품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취업 유발계수도 19로, 소프트웨어(16.5), 자동차(10.8), 반도체(6.2)보다 높다. 더욱이 IT·ET 등과의 융·복합화를 통한 그린 엔지니어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어 한층 주목된다. 예컨대 라인 및 공정을 설계하는 제조준비 단계에 3차원 디지털 기술을 도입, 가상의 테스트베드형 공장을 건설해 제조과정을 미리 점검할 수 있다. 이 경우 실제 플랜트 구축·운영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어 향후 UAE 원전수주 등과 같은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연평균 17%의 성장률을 보여 온 세계 엔지니어링산업은 2008년 기준 1168억달러 시장으로 확대됐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시장 점유율은 0.4%로, 중국의 2.7%에도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기술개발에 1조원을 투자하고, 관련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전문대학원’을 신설하는 등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집중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엔지니어링을 산업 및 시장 창출과 연계된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비단 열매 하나를 따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엔지니어링 시장의 무궁무진한 숲을 누빌 수 있는 도약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khna@ki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