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새설계-기관장에게 듣는다]<2>김용근 산업기술진흥원장

[새해새설계-기관장에게 듣는다]<2>김용근 산업기술진흥원장

 “정부의 연구개발(R&D) 과제도 3.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합니다.”

 우리나라 산업과 R&D의 중장기 지도를 그리는 산업기술진흥원(KIAT)의 수장인 김용근 원장(55)은 새해 화두로 R&D 3.0 시대로의 변화를 꼽았다.

 김 원장이 말하는 R&D 3.0은 칸막이식 R&D의 기본 틀을 깨고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기존 R&D 2.0이 대량생산과 그 기술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3.0 시대에는 경영학·인문학과 디자인 등 기술 외 요소와 융합해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다. 지난해 KIAT가 추진했던 ‘테크플러스2010’과 청소년을 위한 기술교재인 ‘테크놀로지의 세계’ 출간 등의 여러 사업도 R&D 3.0 시대의 본보기다.

 지난해 테크플러스는 경영자인 타드 브래들리 HP 부사장과 가상현실의 대가 재런 레이니어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명사가 참여하는 지식콘서트로 개최됐다. 기술 위주의 전시에서 벗어나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한데 어우러져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창의나 상상력은 새로운 정신과 세계를 접할 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 4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서도 R&D가 3.0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베트남 등 후발 국가가 낮은 임금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대량생산체제를 선도하는 형국에서 기존 기술 위주의 시장 개척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인사조직 컨설팅 기업 머서가 평가하는 삶의 질이 우수한 도시로 매년 비엔나·취리히·제네바·밴쿠버·오클랜드 등이 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곳은 기술적으로만 선진도시가 아니라 자연환경·예술·인문학·박물관 등 다양한 삶의 질을 갖춘 아름다운 명품도시입니다. 이들 도시에 관광객과 주재원이 몰리면서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명품이 몰리는 거죠.”

 김 원장은 “우리나라에서도 기술과 경영, 그리고 예술이 결합한 제품이 어우러진 명품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명품 도시가 그렇듯 명품 역시 기술에 예술·인문학·철학·디자인이 융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품 역시 대량생산과 판매를 통한 박리다매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최선의 명품으로 고부가 시장에서 승부해야 국민소득 4만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견해다.

 

 -새해 첫 화두로 R&D 3.0을 꺼내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국민소득 3만∼4만 달러시대에는 기존 틀을 벗어나 새로운 융합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합니다. 기업과 정부가 추진하는 R&D 역시 새로운 융합을 시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기술에 과학·발명·사람·교육·사회·환경·정치·윤리·예술 등 폭넓은 분야의 플러스가 시도돼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나 산업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R&D 3.0은 나아가 R&D가 진화하는 스마트 R&D와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R&D 3.0을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술이 예술수준으로 승화해야 R&D 3.0 시대를 열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엔지니어나 연구가 자신이 기술적인 전문성 외에 자신을 예술가라고 여길 만큼 열린 사고를 지녀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적인 전문성 외에 동양적 사고와 비틀즈 음악에 심취해 하이테크를 넘어서 예술적인 감각과 개방이 돋보이는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기업가나 예술가에도 적용됩니다.

 -정부 R&D에는 어떻게 적용됩니까.

 ▲정부 R&D 자금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정부 R&D 과제에도 새로운 시도를 하겠습니다. 우선 기존 정부 과제 평가위원의 구성에 변화를 줄 생각입니다. 시범사업 차원이지만 일부 과제 평가위원에 최고경영인(CEO)·엔지니어·디자이너·마케팅전문가·학자 등이 포함된 드림팀을 구성합니다. 기존에는 기술전문가만 참석해 기술을 평가했지만 앞으로 완성도가 높은 과제에 가점을 주는 것입니다. 평가 항목도 바꿀 예정이죠. 그러면 프레젠테이션만 잘하고 기술이나 기획력이 떨어지는 사업안으로는 과제를 통과할 수 없게 됩니다. 또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기술이 선택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따라서 앞으로 기업과 정부 과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다양한 전문가를 구성해 완성도 높은 기술과 기획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는 3월부터 정부 R&D 과제에서 서서히 적용될 겁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R&D 3.0 시대를 준비해야 할 텐데 KIAT가 산업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기업에게 지원하는 제도는 없나요.

 ▲프리 프로덕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정부와 함께 고려 중입니다. 프리 프로덕션이란 영화나 드라마·애니메이션 등을 촬영하기 전에 준비하는 작업공정으로 연구개발에 필요한 수요조사, 법률컨설팅 등 제반 지식기반활동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국가 R&D 정책에는 신기술을 창조하는 아이디어, 수요자 요구를 파악하는 조사활동, 기술검증을 위한 법률과 세무상담 등의 프리 프로덕션 활동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앞으로 KIAT가 기업의 프리 프로덕션 활동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사업비 항목에 창의활동비, 비즈니스 연계활동비 등을 지원하는 게 이 일환입니다. 그러면 R&D 사업의 실패 확률도 훨씬 줄고 R&D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반영될 수 있습니다.

 -R&D 3.0을 글로벌 영역으로 확장할 계획도 있나요.

 ▲당연히 R&D 3.0은 글로벌 연대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국내에 한정된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는 국내용으로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국제 협력이 자연스럽게 국가 R&D에도 반영돼야 합니다. 정부 R&D에 해외 기술연구진의 참여도 그래서 필요합니다. 앞으로 정부 추진 R&D 과제에는 일정 비율이 해외 기술진의 참여하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 국제적인 R&D 협력뿐만 아니라 지역 간 R&D에도 지역 외 사람이 참여하는 경우 평가 시 가점을 줌으로써 협력을 유도하려 합니다. 그야말로 그간 칸막이식 R&D 기획을 지역 간, 산업 간, 국가 간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융합형 열린 R&D를 추구하는 것이 R&D 3.0 시대의 모토입니다. 즉 열린 사고와 융합으로 고부가가치 기술과 제품을 만들 수 있는 R&D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새해 조직운영에 대한 방침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지난해 5개 기관이 통합 이후 1년 3개월 만에 소속기관별로 다른 직급과 보수체계를 조정했습니다. 노사공동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올해 진흥원은 임직원 간 소통을 원활히 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 입니다. 소위 다이얼로그 3.0이 조직의 화두입니다. 기존 소통이 의사나 정보전달에 그쳤다면 진화된 소통은 조직원 간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서로 지식을 공유하며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토론 분위기를 조성하고 조직 내 활력을 심어줄 수 있는 젊고 패기 있는 우수 인재를 간부로 발탁할 예정입니다. 또 고객만족을 위한 시스템 운영체계도 갖추려합니다. 이를 위해선 임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R&D를 진흥해야 합니다.

 

 ◇KIAT의 스마트 R&D 전략은=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올해 ‘스마트R&D’란 개념 아래 사업관리 체계를 고객 중심으로 바꾼다.

 스마트R&D란 R&D 자원의 효율화와 최적화로 고부가가치 연구성과를 창출하고자 하는 신개념의 사업관리 패러다임이다. 창의적 R&D 과제를 유인하는 동시에 제대로 된 과제물 선정과 관리를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R&D를 추진하는 게 목표다. 스마트R&D를 위해서는 기존 기술 중심의 R&D 과제를 기술과 비기술계 인력이 융합하는 테크플러스형과 R&BD형 과제로 전환 유도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사업자 선정 평가지표에 기업가정신뿐만 아니라 창조·개방과 관련한 지표를 반영한 것도 이 일환이다. 진흥원 내에선 부서별로 사업 프로세스 경진대회를 개최해 정부의 R&D 과제 프로세스의 개선 내용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사업을 펼쳐 오고 있다. 또 공유된 R&D 프로세스를 정부 과제에 적용해 개방과 융합이 공존하는 R&D 과제 창출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칸막이식 R&D 과제 추진에서 벗어나 대·중소기업 간, 여러 지역 간, 다양한 학문 간, 다른 국가와의 협력해 R&D를 추진할 경우 평가 시 가점을 줘 융합과 개방을 유도하는 것이다.

 지역산업 지원방식도 수요자 중심으로 틀을 바꾼다. 기존 장비 위주의 지원에 머물지 않고 시장이 원하는 R&D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위해 민간 R&D 투자환경 조성을 위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현장위주의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국제화 업무도 강화한다. 부품소재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기술마케팅 지원을 강화하고 유럽대학과 산학협력형 과제를 추진하는 등 국제 공동 R&D 발굴에 나설 방침이다.

 산업기술계의 온오프라인 유대 강화에도 힘을 쏟는다. 올해 테크플러스 분과포럼의 분야별 연구회 구성을 적극 지원하고 온라인 연결망을 구축 연구회간 교류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어릴 적부터 기술 문화가 몸에 베일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병행한다. 지난해 ‘테크놀로지의 세계’를 발간하고 방과 후 학습으로 ‘기술공작실’을 지원했듯 청소년이 기술 체험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기술박물관 건립 추진도 이를 위한 연장선상이다.

  

 ◇김용근 원장은=김용근 산업기술진흥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5월 행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1983년 해운항만청을 거친 이후 1985년부터 줄곧 산업자원부에서 일했다. 상공부시절 산업진흥과, 국제협력과, 통상정책과 등서 산업진흥 업무를 두루 거쳤고 통상산업부 국제기업담당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관, 산업정책본부장 등을 지내며 산업 지원의 틀을 마련한 관료 출신 수장이다.

 그는 선진국형 R&D를 강조하는 기관장이다. 지난 2009년 취임 이후 꾸준히 ‘기술에 예술을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테크플러스 R&D를 강조해 왔다. 올해 들어서는 R&D의 버전을 혁신하는 R&D 3.0 시대를 주창하면서 R&D의 혁신을 이끈다는 방침이다.

 여러 업종 간 융합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테크플러스2010’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쉽고 재미 있는 포럼’으로 산업문화의 신역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대외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각종 포럼의 연사로서 산업문화의 확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 원장은 “새해는 KIAT가 5개 기관이 하나로 융합한 명실상부한 통합 기관으로서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KIAT만의 혁신적 조직문화를 정착시키는 한편 진화된 R&D 문화를 만드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kr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