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토끼에 관한 얘기가 참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얘기는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토끼가 세개의 굴을 파 놓는다는 교토삼굴(狡■三窟)이다. 적이 하나의 굴을 공격해 막히면 두 번째 굴로 피하고 두 번째 굴마저 막히면 다음 굴을 통해 위기를 벗어난다는 게 핵심이다. 이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최근 우리 경제의 모습과 일맥상통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해였던 작년, 우리 IT산업은 말 그대로 호랑이처럼 질주했다. 수출액이 1540억달러로 27%나 증가했고 IT무역수지도 782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리 경제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국제금융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IT산업의 선전 덕분이다.
작년 초 우리 IT산업의 출발은 기회라기보다는 위기에 가까웠다. 아이폰 충격으로 인해 ‘IT강국의 아성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초조함으로 새해를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IT산업인들의 호랑이와도 같은 기개는 그러한 우려와 불안감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좋은 일은 연속으로 일어나기 힘든 것인가. 금년 우리 IT산업은 작년만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아이폰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것처럼 교토삼굴의 지혜를 가지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경제구조를 토끼의 굴에 비교하자면 토끼가 그랬던 것처럼 우선 주로 거주하는 굴을 보다 강력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우리 IT수출의 70%는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이 차지한다. 이 주력분야에서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굴을 더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양적 투자를 통한 비용우위 전략보다는 기술과 창조성에 기반한 질적 차별화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그러한 일 중의 하나다. 특히 창의성을 가진 중소기업과의 협업을 확대해 동반성장을 이어나간다면 보다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확신하다.
두 번째로는 새로운 굴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스마트폰을 넘어 스마트TV, 스마트워크 등으로 발전해감에 따라 소프트웨어(SW)와 지식서비스의 중요성과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산업구조를 SW와 지식서비스 산업으로 중심이동할 필요가 있다. 미래 성장동력의 보다 큰 물줄기는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새롭게 떠오르는 산업 분야에서 발생하지 않았던가. 그런 만큼 SW와 지식서비스 쪽에 투자를 늘리고 정책을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역량을 모으는 한해가 돼야 할 것이다.
세 번째 굴은 IT융합의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IT융합은 매년 12%씩의 성장이 예상되는 신성장 분야다. 자동차, 조선, 건설, 의료 같은 기존 산업과 IT의 결합은 가속화될 것이고 융합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IT융합 시대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제조업과 IT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우리의 역량을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각 파트별로 니즈와 파급력을 파악하고 IT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올 한해 정부와 기업, 대학 모두가 ‘세 개의 굴을 판’ 토끼처럼 지혜롭게 보내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을 쑥쑥 만들어내는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정경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 kwchung@nip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