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는 ‘기초과학 육성’과 ‘방사광가속기 도입’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연관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미 포항방사광가속기가 3.5세대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고, 양성자와 중입자 가속기도 한창 건립 중이다. 또 올해 4세대 방사광 가속기 도입에 착수한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가속기 문제를 전문으로 다뤄온 핵물리학자 K씨는 “현재 우리나라에 필요한 가속기는 2기 정도”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오는 2014년부터 추진할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기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논의 초기 구상에는 가속기 2기를 한곳에 한꺼번에 넣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할 만큼 상호 연계성도 고려했다”며 “중이온 가속기만 1년을 고민하고 논의했는데, 4세대나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위치를 포함해 어떠한 논의과정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현재 추진 체계에 대해 비판했다.
11일 본지가 입수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2011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가속기 1기당 연간 평균 대략 500억원의 운영비가 소요된다. 우리나라가 현재 계획대로 가속기 6기를 보유할 경우 매년 3000억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설치에 따른 비용도 많이 들어가지만, 설치 후 유지 보수비가 만만찮다. 모두 기초과학예산에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포스코가 출연해 포스텍에 건립한 3세대 방사광 가속기 운영재원은 지난 2009년 이미 바닥났다. 이후 정부의 인건비 지원액이 급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포항가속기연구소 측은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운영 재원과 체계를 정부에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국회는 파악했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은 “가속기는 이용자 시설이기 때문에 지역적인 위치는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며 “기초과학은 맨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각 단위에서, 국가는 국가대로, 실험실은 실험실대로 할 일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 총장은 또 미국이나 일본의 예를 들며 “거대 과학시설을 만들어 빅 사이언스를 해야 한다”며 “다만 투자 대비 효과 등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전문위원회가 지난 2009년 정부를 상대로 가속기 투자 우선순위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국가경제 및 과학기술 투자 규모 등을 감안했을 때 1기 정도의 가속기 투자(6년간 5000억원)는 필요할 것으로 권고했다. 또 전문가 11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2차 가속기 투자타당성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8%가 1기 설치가 적당하다는 응답도 함께 보고했다. 이 같은 가속기가 무려 1년 만에 6기로, 지자체 이권사업으로 변질된 것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오는 2013~2014년부터는 4세대방사광, 차세대 방사광, 중이온, 중입자 등에 한꺼번에 수천억원의 예산이 매년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상민 의원(자유선진당)은 “정부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권고도 무시하면서까지 방사광가속기 업그레이드 및 신규설치를 이중, 삼중으로 추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향후 가속기 관리비 예산 대책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속기 성능도 따져봐야 한다. 현재 포항가속기연구소가 밝힌 3.5세대의 성능은 세계 최고인 영국의 ‘다이아몬드’ 수준. 특히 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가속입자 에너지가 10GeV(기가볼트)다. 에너지 크기로 성능을 모두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정부가 2014년부터 추진할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 가속입자 에너지 크기가 3.5GeV다. 이용자 또한 국내에는 200~300명에 불과하다.
교과위도 예산안 검토 보고서에서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입지선정 과정에 대한 공모 또는 지정 절차가 없고, 지방비 부담률도 총사업비 4260억원의 6.1%인 26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와 매칭펀드로 국가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지자체와도 형평성이 어긋난다.
그러나 최근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한 임기철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은 “국가 경제규모에 맞춘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일본은 가속기가 20여기고 15명이 노벨과학상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5기 전후의 가속기를 보유하는 것은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희범·윤대원 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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