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출연연을 바꿔라”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날씨로 치면 ‘흐림’이다.

 새해를 맞은지 2주가 지났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듯 체념한 표정이다.

 사실 출연연 연구원들은 지난 한해 이런 저런 구실을 대는 정부로부터 엄청나게 ‘쪼임’을 당했다. 1년내내 감사도 받았다. 이유야 있겠지만 출연연 사람들은 이런 ‘고초’가 정부가 추진하는 출연연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야 아니라고 하겠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게 대덕연구단지 정서다.

 과학기술자에게 지난 한해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물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아내가 무섭다. 직장을 옮기란다. 10일이 넘는 휴가는 매년 반납이 불가피하고 매일 야근에 가정을 내팽개친다며, 게다가 줄어드는 쥐꼬리 복지혜택에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알라보라는데 고민이 많다.”

 내로라하는 R&D 능력을 보유한 모 정부출연연구기관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연구원의 넋두리다.

 연말정산 비과세 혜택은 기획재정부가 모두 없애 버렸다. 과학기술인공제조합이 있지만, 누적 기금은 아직 ‘쥐꼬리’ 수준이다. 퇴직 후 과기연금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불혹을 훌쩍 넘긴 박사급 10년차 연봉은 인센티브까지 보태 대략 7000만~8000만원선이다. 대학 졸업하고 유학 다녀와 35세께 잡은 직장이다.

 신입직원 연봉은 20%나 깎였다. 야근은 할수록 손해라는 푸념이 나온다. 본인의 주머니서 식비가 차감되기 때문이다. 경조휴가도 대폭 줄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국회의원은 ‘연구원 개인당 과제수가 많다, SCI(과학기술논문색인)급 논문이 없다’며 들볶기 일쑤다.

 관리기관의 PM(프로젝트 매니저) 눈치도 봐야한다. 중간평가도 받고, 과제보고서 쓰고 3P(특허, 논문, 기술이전)까지 챙기기에 정신없이 하루가 간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이라는 제도도 일부 출연연엔 도입돼 있다. 한번 잘못이면 퇴출이다. 2년연속 최저 평가시 퇴출(DDF)하는 시스템도 만들어놨다.

 기획재정부는 출연연을 정부부처의 최말단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해 놓아 관리기관에 준하는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툭하면 일반 공기업 기준이나 기업체 등과 비교하며 감사원의 잣대를 들이대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실험실에서 프린터 토너 영수증 챙기는 일이 일상의 중요업무가 됐다.

 이달 말이면, 새로 꾸려진 출연연 선진화 기획단에서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방안을 내놓는다. 벌써부터 A안과 B안이 돌며, 대덕 연구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기획단 차원에서는 이미 정해졌지만,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기관이 확정하지는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과학기술은 경제적인 논리나 잣대만으로는 답을 내기 어려운 분야다. 자율성과 독립성, 창의성이 전제되지 않고는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과학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R&D 자체가 공기업의 관리업무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차제에 논란이 됐던 출연연 연구원 정년도 검토해야 한다.

 기관장 임기는 독일 막스프랑크처럼 종신제는 아니어도, 5~10년 정도로 늘려야 한다. 일할 맛나는 분위기를 만들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의 초석을 놓는 일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