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우리나라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은 이미 미국의 대표 전자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그동안 미국의 대표 전자기업이었던 IBM이나 GE가 제조업보다는 서비스 분야로 사업전략의 초점을 옮겼고, 그 자리를 애플이 자연스럽게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 생산방식을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부품이나 제품 중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애플은 아이폰의 제품개념을 설계하고, 아이폰을 디자인하고, 전 세계에 판매하는 역할만 담당한다. 실질적인 생산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가 플래시메모리를, 마그네틱헤드는 일본의 TDK가 맡고 있고, 전자회로는 쇼와덴코라는 일본기업이 담당한다. 이들 부품을 사용해 대만의 폭스콘테크놀로지가 중국에서 최종조립해 완성품을 만들고, 여기에 애플의 상표가 부착된다.
이와 비슷한 예는 전자산업분야에서 새롭게 성공하는 여러 기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미국 LCD TV시장에서 삼성전자나 소니와 경쟁하면서 시장 점유율 1위를 바라보고 있는 비지오의 돌풍이다. 이 회사는 2002년 설립되어 전 직원이 200명 미만의 중소기업으로 제품의 기획, 디자인, 마케팅만을 담당한다. 비지오는 ‘생산공장’ ‘선도기술’ ‘유통채널’이 없는 3무(無) 기업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산자와의 협업을 통해 다른 경쟁자보다 20% 이상 싸게 만들어 판매하는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PC분야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만의 에이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델이 PC시장에서 점유율 1위로 승승장구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PC분야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에이서PC가 전시돼 판매되고 있다. 이런 에이서의 전략은 한마디로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생산업자에게 보내면, 이들이 만들어서 보내주는 것’이다. 이 경우 에이서는 PC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PC제품을 한번도 만지지 않고 남의 손을 빌려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에이서의 전략은 가장 저렴하게 생산하는 기업을 자유롭게 선택해 PC분야에서 최저가 판매기업이 되면서, 동시에 재고를 가지지 않는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위 3사의 사례는 제조업 분야에서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다. 우선 ‘제조업은 영원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누구든지 잘 만드는 기업이 번창하고 선두기업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조업은 영원’하지만 제조업의 사업모형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응용에 따라 급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이제까지 제조업의 통념인 모든 것을 자신이 만들어 한다는 것으로부터, 남의 손을 빌려서 한번도 만지지 않고도 일등 제조기업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경영의 혁신(innovation)이라기 보다는 기존 사업 모형의 와해(disruption)에 가깝다. 앞으로 정보통신기술의 지속적인 발달과 응용의 확대는 경영에서 더 많은 돌풍을 일으킬 것이다. 특히 손안의 컴퓨터라고 불리우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태블릿pc)의 확산과 응용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와해의 시대’를 전개할 것이다.
지난해에 ‘오바마’라는 건배사가 화두에 올랐다. 이제 와해의 시대의 건배사는 ‘오직 바라만 보며 마음대로’ 생산할 수 있는 ‘오바마’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는 제조분야 뿐만 아니라 제품개발에서부터, R&D, 광고 등 기업의 모든 기능에서 타기업과 협업을 통해, 상품을 만지지 않고 일등하는 기업이 등장하고 번창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곽수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skwa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