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파트너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비즈니스계의 냉엄한 구호가 올초부터 글로벌 정보통신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오랜 대립 관계를 깨고 애플과 버라이즌, 마이크로소프트(MS)와 ARM 진영, 미국 케이블 TV와 지상파 방송사가 손을 잡는 진풍경이 연출되면서 정보기술(IT) 업계의 합종연횡 구도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 1위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은 지난 11일(현지시간) CDMA 버전의 애플 아이폰4를 2월 10일부터 출시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해 통신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 신병기를 2007년 6월 세상에 내놓을 때부터 미국 2위 이동통신업체인 AT&T와 손을 잡았지만 4년 가까운 독점 공급 구도가 깨지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AT&T의 통화 품질에 불만을 가졌던 AT&T 이용자들이 버라이즌 아이폰4로 갈아탈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이폰을 독점 공급해 가입자 확보에 상당한 재미를 봤던 AT&T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버라이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시장 점유율을 키워온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진영도 작년과 같은 버라이즌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지난 6일(현지시간) 개막된 CES 2011에서는 미국 케이블TV 1위 업체인 컴캐스트와 미국 지상파 네트워크의 공동 인터넷 서비스인 훌루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의 CES 기조연설 현장에 참석해 삼성전자 스마트TV와 공동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함께 피력한 것. 이경식 삼성전자 상무는 "컴캐스트ㆍ타임워너 등 미국 케이블TV 사업자와 NBC ABC C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은 방송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관계인데 이들이 삼성전자와 한 무대에 올라 협력을 다짐한 것은 종전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구도"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과도 연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니는 삼성전자와의 7년 밀월관계를 청산하고 LG디스플레이로부터 중소형 TV용 LCD패널을 공급받기로 했다.
소니는 2004년 삼성전자와 LCD 합작법인을 설립한 후로 LG디스플레이와 거래를 끊었지만 고품질 LCD 패널을 생산해 애플 등에 공급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와 계약을 재개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박성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새로운 IT 패러다임이 급부상하면서 획일화된 제휴 모델로는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협력관계를 모색하는 것"이라며 "기존 합종연횡의 틀을 깨는 제휴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MS는 인텔과의 20년 혈맹 관계를 깨고 ARM이 설계한 반도체를 탑재한 기기에서도 윈도 운영체제(OS)가 구동될 것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ARM은 2009년 매출 5억4000만달러를 기록한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팹리스)로 퀄컴, 엔비디아,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이 ARM 설계를 이용해 반도체를 만든다. ARM이 스마트폰, 넷북 등 모바일기기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자 MS가 인텔 의존도를 줄이고 거래관계 다변화를 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매일경제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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