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영국 BBC는 지난 2006년 4월 25일 ‘창조적 미래전략’이라는 6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크로스미디어 편집 전략을 요체로 개인화, 오디오 비주얼 콘텐츠, 사용자 생산 콘텐츠 강화 등이 핵심이었다. 당시 BBC는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1년여 동안 조사와 연구를 집중적으로 벌였다. 오는 2012년까지 미디어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앞서 예측하고 적극 대응하려 했던 의지였다. 미래 전략을 발표하면서 “BBC는 더 이상 스스로를 TV나 라디오 방송사로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도 선언했다. 디지털 멀티미디어·멀티플랫폼 환경을 선도하며 BBC 프로그램과 수용자들의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비전이었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뉴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BBC를 통해 공영방송의 개혁과 미래 전략을 되짚어야 할 때다. 책은 BBC의 개혁 모델을 연구하고 그 모범 사례를 한국 방송 사업자들이 배우도록 하자는 취지로 쓰였다. 디지털화와 탈규제 등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모든 방송사들은 위기를 맞았다. 방송산업 내 경쟁은 물론이고 통신 등 이업종 사업자들과도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방송 산업 환경에서 공영방송이 과연 시장 경쟁력과 공익성 모두를 갖출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한다. 스마트폰이 또 한 번 불을 지핀 뉴미디어의 붐, 수신료 인상과 종편 사업자 선정 등 최근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방송 시장의 이슈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살펴본다.
저자들은 방송사들에 변화는 곧 생존이라고 강조한다. 다만 그 변화는 개악이 아닌 개혁이어야 한다는 점. 가장 좋은 선례로 삼을 수 있는 곳이 바로 BBC다. BBC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보수적이지 않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대체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영과 관리 측면은 물론이고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도 앞서 변화를 주도해 온 덕분이다.
책의 저자들은 BBC의 사례를 심층 분석하기 위해 3개월간 BBC 개혁 프로그램을 사전 연구한 뒤 현지 방문 조사를 떠났다. 영국 현지에서는 BBC·BBC트러스트·ITV·채널4 등 주요 방송사들과 정책 기관 관계자들을 심층 면접한 연구결과를 고스란히 담았다.
최근 영국의 디지털 방송 서비스 발전과 보급은 BBC가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지상파 플랫폼인 프리뷰, 디지털 위성 플랫폼인 프리샛, 주문형 다시 보기 서비스, 주문형 서비스 플랫폼인 캔버스 계획 등 주요 디지털 방송 서비스를 모두 BBC가 기획하고 추진해 왔다. BBC는 격변기 방송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바로 콘텐츠 경쟁력이라고 판단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오랜 기간 활용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영향력’의 콘텐츠에 집중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BBC의 끊임없는 변신은 바로 남다른 인력 관리 정책이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됐다. BBC는 인력 관리 조직을 개편하고, 인력 관리 업무 가운데 상당 부분을 외주로 돌렸다. 인력 관리 정책의 적정성을 상시적으로 평가해 효율성을 증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강형철·성동규·최선규·이준웅·정준희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3만2000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