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야기]사막에서 자신을 노려보다, 연극 `트루웨스트`

[공연이야기]사막에서 자신을 노려보다, 연극 `트루웨스트`

 어떠한 상징이나 왜곡 없이 사실적 소품들로만 표현된 평범한 가정집 무대는, 그러나 ‘진짜 서부’의 풍경을 담았다. 카우보이모자의 사내와 씬 전체를 아우르는 모래의 버석거림, 메마른 냄새, 영원한 미개척지의 꿈을 상기시키는 서부. 연극 ‘트루웨스트’에는 사막 한가운데서 극에 달한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서로를 노려보는 두 남자, 혹은 한 인간의 두 자아가 있다.

 연극의 실질적 공간은 알래스카로 휴가를 떠난 어머니의 빈 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재하는, 즉 가족으로서의 긍정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이곳에 시나리오작가 동생 ‘오스틴’과 사막을 떠돌다 온 형 ‘리’가 있다.

 이미 갈등은 시작됐다. 상세하게 묘사된 두 형제의 외형적 이미지 대립은 차이에 따른 갈등을 예고하는 동시에 화해의 가능성을 차단시킨다. 반듯한 셔츠와 단정한 머리, 타자기 앞에 앉아있는 세상 모두에게 어울릴법한 뿔테안경을 쓴 오스틴은 애써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낡고 너저분한 옷과 헝클어진 머리에 지겹도록 손에서 술을 놓지 않는 형 리는 산만하도록 주위를 뱅뱅 돌 뿐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대화하지만 형제적 소통과는 거리가 멀고, 그 속에 내재돼 있는 폭력성과 어긋나는 대화의 목적지는 오히려 유머가 된다. 도대체가 물질적, 감정적 이익도 없이 소모적이기만 한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대립되는 것은 두 남자의 성격뿐 아니라 문명사회와 자유로운 사막의 삶이다.

 리는 오스틴과 공동 작업을 해오던 영화 프로듀서 사울을 만나고, 구체화되지 않은 서부극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리는 골프내기에서 사울을 이겨 자신의 시나리오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과격한 리와 그의 충동적 폭력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오스틴의 상황은 여기서부터 전복된다. 형의 시나리오 작업 때문에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자신의 프로젝트를 멈추게 된 오스틴은 혼란에 빠진다.

 공존할 수 없는 형제의 두 이상은 그들이 결국 같은 딜레마에 빠져있음을 알린다. 자신의 삶이 상대보다 우월한 듯 과시하지만 실은 자신과 다른 상대의 생활을 상상하며 살아왔다. 연극은 형과 동생, 부와 가난, 사막과 도시, 환상과 현실 등 대립적 요소들로 가득하다. 이 구조는 두 형제의 대결이 아닌, 한 인간의 이중적 자아간의 갈등과도 관련돼 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오스틴과 이곳에서 살 수 없어 사막에 가야했던 리의 고백처럼 이상으로 존재하는 두 세계는 완벽하지 않다. 이 꿈은 오스틴과 리가 함께 써내려가는 서부극을 통해 상징화된다. 허구로 판단됐던 서부의 이미지가 부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목격한 오스틴은 사막으로 가기 위해 형의 서부이야기를 타이핑한다.

 이미 공간은 리가 상상하는 환상의 서부가 점령하고 있다. 두 남자는 추격을 반복하며 광야를 달리지만, 서부극이 마무리되지 못하는 것처럼 현실도피적인 이 발상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한다. 서부는 두 개의 가치가, 혹은 한 개인의 내부가 끊임없이 갈등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장소다.

 형과 동생의 극적 대립은 배우 배성우와 조정석의 연기로 놀랄만한 생명력을 얻는다. 두 배우는 탄탄한 원작의 초석위에 그들이 지을 수 있는 최상의 이야기를 건설하므로 연극을 완성시켰다.

 변하지 않는 무대 공간은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암전으로 시간을 전환시키며 심플한 조명으로 외적, 내적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사막의 분위기가 조성된 마지막 장면에서 두 형제는 서로를 노려본다. 죽은 줄 알았던 리가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쉽게 포기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자신과의 싸움이 다시, 어쩌면 ‘제대로’ 시작됐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이야기]사막에서 자신을 노려보다, 연극 `트루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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