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문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어른이 말하면 듣기만 하고 시키는대로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 왔다. 군대조직에서도 그렇게 했고, 가정도 유교의 전통적 분위기에서 어른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 하도록 교육받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가정이나 회사에서 궁금하거나 다른 의견이 있어 질문하면 대부분 반항하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 들이기 일쑤다. 또, 자기의 질문이 너무 뻔한 질문이라는 생각에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평소에 하는 대화를 살펴보면 대부분 일방적으로 자기 의견을 설명하는데 그친다. 상대방에게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통신기기의 눈부신 발전과 인터넷의 활성화로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정답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이럴 때일수록 질문하고 확인해야 할 일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질문하지 않고 있다.
1944년 핵자기 공명의 발견에 대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이작 라비교수에게 어떻게 그런 독창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는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방과후 어머니께서 ‘오늘 선생님께 어떤 것을 물어봤니?’라는 질문을 받았던 덕분”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질문은 왜 하는 것일까.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의심나는 사항이나 궁금사항을 확인하거나 그와 다른 생각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대답을 들으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나의 생각을 확실하게 정리하는 기회가 된다. 또 질문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생각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아가 상대방을 격려하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촉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좋은 질문일수록 상대방은 당장 대답할 수 없어 곤혹스러워 할 수 있으나 잠시 기다려 줌으로써 자기 내면에 숨어 있던 생각을 스스로 찾아내고 발견하게 된다. 또 상대방이 ‘지금·여기’에 처한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까지 찾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질문을 잘 할 수 있을까. 우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 의문이 있는 내용이 생겼다면 질문할 수 있다. 결국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감정까지 공감하면서 상대방이 했던 말을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질문할 준비가 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질문해 보자. 상대방이 주관식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예, 아니오’라고 짧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닫힌 질문이다. 열린 질문을 해야 상대방은 자기의 생각, 자기의 의견을 쉽게 대답할 수 있게 되고, 이야기의 실타래를 편안하게 풀어갈 수 있게 된다. 또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질문보다 가능하면 긍정적인 표현으로 질문해 본다. 상대방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대화를 거부할 수 있는 질문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제 불통을 헤쳐가기 위한 질문은 상대방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필요하다. 바깥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자신과의 대화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은 아닐까. 늘 고단하고 힘들었던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얼마나 따뜻한 관심을 보였는지 반성해 보고 잠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갖자. 그리고 자신이 정작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지금까지 미뤄왔던 나 자신을 위한 질문을 시작해 보자. 이렇듯 좋은 질문을 통해 신묘년에는 상대방과의 참된 소통의 길을 발견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도 찾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강정환 통통 대표이사 tong@tongtong88.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