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에서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성공시킨 데는 UDT 대원의 역할이 컸다. 그 이면에는 우리 중소기업이 만든 첨단 IT장비인 카이샷(무선영상전송시스템)도 큰 몫을 했다. 홈페이지 구축, 인사·급여관리 등에 머물렀던 IT가 점차 교통정보시스템, 기상예보 등 경영정보시스템(MIS)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IT 간의 융·복합현상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IT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인프라가 되었다.
문제는 IT산업 발전 토양이 체계적으로 엮여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IT정책은 연구개발(R&D)을 확대하기 위해 세제, 재정정책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오프라인 기술을 IT로 대체해야 하기 때문에 수요 창출보다 R&D가 중요했다. 지금처럼 IT 융·복합 기술로 발전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융·복합된 분야에서 새로운 수요가 없으면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급부문의 R&D정책과 공공수요 부문의 조달정책이 접점을 형성해야 한다.
조달청의 IT용역 계약은 연간 약 1조6000억원 규모로 전체 용역계약(2조7000억원)의 약 60%를 점한다. 이 구매력을 어느 분야에 집중하는지, 발주방식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IT산업의 지형이 달라진다. 발주체제에 따라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도 달라진다. 국가정보화 사업은 통합발주가 관행화돼 있다. 그러나 통합발주가 산업의 지속 발전이나 벤처 육성, 청년실업 해소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턴키공사와 같이 일괄발주는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애프터서비스(AS)를 용이하게 한다. 그러나 일괄발주는 하도급 관계로 이어져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납품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다. 선진국에서는 대·중소기업이 대등한 납품관계인 데 비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하도급관계다. 하도급관계가 보편화된 데에는 일괄발주에도 원인이 있다.
국가정보화 시장에도 유사한 문제가 있다. IT공공시장에서 대기업 수주율은 16%인데 수주금액은 65%를 차지한다. 고도의 지식기반 산업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은 IT산업에서는 어느 정도의 하도급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형 SI업체가 기획단계부터 AS까지 모두 책임져 준다는 편리성 때문에 발주담당자들이 일괄발주를 선호한다면 문제다.
IT분야에 하도급 구조가 고착화되면 실이 더 크다. 특히 IT는 고급 두뇌들이 선호하고 벤처 설립과 창업정신 발휘가 용이한 분야다. 무엇보다 IT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해 분리발주를 검토해야 한다. 미국은 연방조달규칙(FAR)에 분리발주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일본 역시 정부조달 기본지침에 분리발주를 강화하고 있다. 나아가서 미국에서는 IT솔루션의 유지보수뿐만 아니라 개선제안까지 통합발주하고, 5년 동안의 장기계약을 통해 IT의 안정적 개발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40억원 이하의 IT사업에는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SW산업 발전을 위해 일정금액 이상의 IT사업은 분리발주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경쟁력 있는 IT기업 육성은 선진국 진입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요조건이다. 조달청은 올해 IT용역 발주체계를 전면 평가할 계획이다. 발주기관의 일괄발주 선호 이유와 선진국 제도를 현지 조사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IT 현주소에 적합한 발주방안이 시급하다.
노대래 조달청장 dlnoh@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