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상생을 강조하는 각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대·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하는가 하면, 재계 신년인사회에서도 대기업 총수들에게 동반성장 추진을 강하게 주문했다. 대기업들도 협력사와의 상생과 동반성장을 올해의 경영화두로 제시했다. 연초의 움직임만 보면 정부와 대기업의 상생의지가 어느 해보다 드높아 보인다.
하지만 역대 정부치고 상생을 강조하지 않았던 정부는 없다. 임기 후반을 넘긴 현 정부도 출범 초기부터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강조해 왔지만 그 성과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난 연말 내내 요란했던 ‘통큰치킨’ 논란과 기업형 슈퍼마켓(SSM) 문제를 생각해보면 아직도 우리사회의 경제주체들은 상생에 대해 동상이몽에 빠진 듯하다.
늘상 정책구호로만 존재해 온 대기업과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간의 상생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동안 이미 수많은 동네 영세상권이 무너졌다. 문어발 식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대기업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에는 애플, 구글, 오라클 같은 독자 소프트웨어(SW) 기업이 드물다. 대부분 대기업집단 소속이거나 그로부터 파생된 기업들이다. SSM과 통큰치킨 문제에서 보듯이 돈 되는 곳이라면 영세자영업자의 영역까지도 대기업이 진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을 접으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공정경쟁과 협력을 위한 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한 시장경제질서를 만들자는 요구를 대기업의 자율적 의지에만 기대하기엔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
SW 업계에서는 불합리한 저가경쟁을 부추기는 입찰제도의 개선, 공공SW사업의 대기업 입찰 참여제한 요건 강화, 대기업의 구매제도 개선 및 납품단가 현실화, 대금 지급조건 개선 등 공정경쟁을 위한 여러 제도의 현실화를 요구해 왔다. 다행히 지난해 설립된 ‘SW대중소상생협력위원회’가 제도개선 세부계획을 구체화해 SW상생펀드 조성, 입찰제도 개선 등 제기된 몇몇 과제를 현실적 대안으로 발표하고 있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된다.
상생은 대기업이 세계 IT 시장구조가 개별기업 간 경쟁에서 기업연합세력 간 경쟁으로 바뀌는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기도 하다. 얼마 전 국내 굴지의 이동통신업체가 자체 보유한 기반기술을 공개해 애플이나 구글처럼 독자적인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한 것은 대·중소기업 상생을 실천하는 모범 사례로 볼 수 있다. 대기업이 온 모바일 서비스를 다수의 중소기업과 개인 개발자가 참여하는 개방된 공간으로 넓힘으로써 궁극적으로 대기업은 독자적인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시장에서 사업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윈윈 게임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유무상생(有無相生) 난이상성(難易相成) 장단상교(長短相較) 고하상경(高下相傾)’이란 구절이 있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기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루며, 길고 짧음이 서로 견주고, 높고 낮음이 서로 기댄다`는 이야기로 정반대 처지에 있는 두 주체지만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조화를 이루며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다. 새해를 맞아 정부와 대기업의 상생 노력이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닌 구체적 정책과제로 실천돼 대·중소기업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최헌규 다우기술 부회장 hkchoi@dao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