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권 정보통신정책학회장(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시장을 강타한 이후, 국내에서 미래 스마트 네트워크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 저변의 힘은 ‘놀라움’이었다. 피처폰에 안주하던 국내 통신사업자는 물론이고 휴대폰 제조사도 상상 이상의 아이폰 위력에 깜짝 놀랐다. 즉각적으로 자성론이 일었고, 국내 업체들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놀라움이 가실 만하자, 방송통신위원회를 위시해 국내 IT 업계는 미래를 위한 ‘스마트 인프라의 조기 구축’을 화두로 꺼냈다. 아이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스마트 네트워크 구축’을 내거는 우리의 대응 속도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이면에는 아카마이(Akamai)의 조사가 입증했듯이, 초고속인터넷에 관한 한 한국이 전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도 한몫을 단단히 했을 터다.
그렇다면 자신감의 회복만으로 과연 우리가 ‘Beyond 4G’ 스마트 시대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까.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주도권 확보’가 무계획적이고 전략부재의 상태에서 거저 달성될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주도권 확보가 누구의 어떠한 성과를 목표로 하며, 그 목표달성을 위해 어떠한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구상과 실행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바야흐로 지금은 지구촌 시대. 하나로 통합된 글로벌 IT 시장에서 한 국가가 모든 주도권을 가질 수는 없다. 현재 우리 손안에 보이는 스마트 생태계의 외양이 구글, 애플, 삼성, LG, 마이크로소프트, KT, SK텔레콤, LGU+ 등의 사업자는 물론이고 수많은 보이지 않는 앱 개발자가 함께 잉태한 다국적 혼혈아인 것을 보면, 그 점은 분명하다. 결국 국제 분업 체제 하에서 주도권이란 다국적 스마트 생태계의 설계, 구축, 운용, 활용의 밑그림을 누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 성장의 과실을 누가 많이 가져가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미래 스마트 인프라의 비전을 정립하고 이를 전 세계 생태계 참여자와 소통함으로써 지구촌 전체의 공감을 얻어내는 일이다. ‘망 중립성’ 논의를 넘어선 ‘포스트 망 중립성’ 원칙 정립에 관한 논의, 스마트 네트워크의 개념 정립과 아키텍처 설계 노력, 스마트 기기를 모두 아우르는 차세대 생태계 플랫폼 구축,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독자적인 연구개발 전략의 모색 등이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학계와 연구계, 그리고 정부가 함께 나서 미래 스마트 경제사회 시스템의 밑그림을 단단하고 확고하게 그려 나가야 한다. 스마트 생태계의 운용 메커니즘, 규제 원칙, 시장경쟁구도, 네트워크 투자의 선순환 구조 등을 학계와 연구계가 합심해 선도적으로 마련하면, 정부는 이를 선행적 정책으로 구현하고 집행함으로써 국내 업계는 물론이고 전 세계 사업자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야 한다.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역량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바로 제품화(productization) 역량이다. ADSL 기반의 초고속인터넷 리더십이 그랬고, CDMA 기반의 이동통신 주도권과 컨버전스 기술 기반의 기기 주도권도 그렇게 확보했다. 산업 차원에서 보면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주도권도, 조선·철강·가전·자동차산업의 주도권도 모두 제품화 역량기반의 ‘Fast Second’ 전략이 가져다 준 성과요 결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장기목표인 스마트 경제사회 시스템 자체를 우리가 스스로 정립함으로써 전략적 기반을 ‘Fast Second’ 전략에서 ‘First Mover’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스마트 TV’와 ‘스마트 가전’은 이미 가장 유리한 전략적 포지션을 확보했다. ‘스마트 정부’와 ‘스마트 워크’는 의지와 적극성만 있으면, 언제든 앞서 나갈 수 있다. 제품화 역량을 보유한 우리는 방아쇠만 당기면 지체 없이 뛰어나갈 준비가 돼 있다.
‘리더십’이 관건이다. 횃불을 들고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스마트 월드의 강력한 리더십 말이다. 이미 글로벌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삼성과 LG가 나설 수도 있고, 국내 정보통신 3사가 혁신적 자기변신으로 글로벌 리더가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가 경쟁적으로 합심해 나서 주면 좋겠다. 더 나아가 국가 최상위 기구가 지휘봉을 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스마트 시대의 주도권에 국운이 걸려 있다. 우리 모두의 자각과 각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changsg@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