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박스>
꿈꿔왔던 창업은 했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생각과는 다르다. 창업은 어려움과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창업준비부터 인력 모집, 연구개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창업자의 부담은 크고 끝도 없다. 그래서 창업 선배의 노하우는 창업 준비자에게는 큰 도움이자 시행착오를 줄이는 발판이 된다. 신상호 H2소프트 대표, 임영주 넥스토리 대표, 김은구 아이엠게임즈 대표 등 창업한 지 갓 1년을 넘긴 3인에게 창업 스토리와 소회와 포부, 창업 준비자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를 들어봤다.
◇“수익과 기술이 선결돼야 창업의 꿈을 향해 갈 수 있다.”- 신상호 H2소프트 대표
“창업 초기 다양한 실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목표했지만 짧은 시간 기업을 운영하면서 수익 창출과 기술 전문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증권거래 시스템(MTS) 전문회사 H2소프트의 신상호 대표는 ‘수익’과 ‘전문기술’을 기업의 최고 가치로 꼽는다. 프리랜서 5명을 포함해 총 10명의 애플리케이션 개발 경험자와 함께 지난해 1월 창업한 그는 회사를 국내 증권업계 주요 MTS 개발사로 등극시켰다. 지난 1년간 신 대표가 H2소프트를 이끌면서 개발한 애플리케이션만도 KB투자증권의 ‘아이플러스타’, 신한금융투자의 ‘신한굿아이스마트(국내)’ ‘굿아이글로벌(홍콩, 미국)’ 등 다수다. 이제는 MTS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사실 H2소프트 창업 초기 목표는 MTS 애플리케이션 전문개발사가 아니었다. 신 대표는 ‘동남아 여행정보’, ‘영어 콘텐츠와 지역 중심 여행 콘텐츠, SNS 엔터테인먼트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실과 꿈은 달랐던 셈. 그는 “무언가 큰 비전을 품거나 철두철미한 계획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창업기업 여건상 어렵다”고 말한다. 지난 1년간 비전과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을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그이기에 지금 이순간도 수익과 기술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다.
최근에는 ‘수익창출’과 ‘기술적 차별화’를 바탕으로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경영철학에 추가하고 있다. 지금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특수가 언제까지고 지속되지는 않을 만큼 증권 이외의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확보해 변화하는 시장을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전략이다. 지난해가 고객사 앱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 온 시기였다면 올해부터는 자체 브랜드를 앞세운 앱 개발에도 나선다는 생각이다. 창업 1년이 지나서야 당초 목표였던 ‘다양한 실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간 셈이지만, 수익과 기술에 역량을 쏟은 지난 1년이 있었기에 이마저도 가능했다는 평가다.
신 대표는 “자금 걱정 없이 자체 브랜드를 내건 서비스와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이라며 “안정적인 수익창출과 임직원들의 성장을 통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닦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창업의 무게, 그 사명감으로 이겨 보이겠다.”- 임영주 넥스트스토리 대표
“‘사람’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교육용 디지털 콘텐츠 전문기업 넥스트스토리 임영주 대표의 말이다. 지난 2008년 서울대·KAIST의 연합 벤처동아리 멤버들을 모아 사업을 기획한 후 2009년에 법인을 설립한 임 대표는 그 누구보다도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인물이다.
넥스트스토리의 주력사업은 PMP,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참고서를 볼 수 있는 모바일 e북 서비스. 현재 중·고 이러닝 업계에서도 모바일 학습은 동영상이 대부분이고 e북 형식의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진출을 꺼리는 분야다. 기존 출판 업계의 주 수입모델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분야에서 창업을 하다 보니 인력관리도 힘들었다. 4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0명의 조직으로 커졌지만 창업멤버는 임 대표만 남아 있는 상태다. 때로는 자금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주해 개발하기도 했다.
많은 어려움에도 임 대표가 지금까지 넥스트스토리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키워왔던 창업의 꿈과 함께 ‘국립대학교 학생의 책임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교적 저렴한 등록금으로 우수한 교육을 받은 국립대생은 자기 스펙을 쌓아 일자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일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7월 ‘용역의 늪’을 빠져나오면서 회사도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원래의 자본금 1억원에 기술보증기금 2억원을 보태 자금 사정도 한결 좋아졌으며 이달 8일에는 직접 기획·제작한 e북 참고서 ‘참깨’를 출시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싹도 키우고 있다. ‘참깨’는 서울대 사범대, 고려대, KAIST 등에 재학 중인 ‘선배 저자’들이 직접 저술한 수리·사회·과학 3개 영역의 26권 참고서와 최근 5개년 기출문제를 담고 있다. 오는 4월에는 스마트폰 및 스마트패드용 ‘참깨’를 선보이고 연내 직원도 30명까지 충원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임 대표에게 사람은 여전히 난제다. 우수인력에게 창업기업은 그리 ‘좋은 일자리’로 인식되기 힘든 탓이다. 임 대표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항상 좋은 옵션이 있다”며 “창업이 가지는 리스크를 감당하길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을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쯤으로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며 “심지어 창업경진대회 참여도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여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현상에는 스타트업기업에는 곳곳에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벤처기업의 실패에 지나치게 가혹하다. 하지만 임 대표는 중간에 적당히 출구(exit)를 찾을 생각은 없다. 끝까지 꾸준히 해나가며 ‘훌륭한 기업’으로 만든다는 포부다.
◇“창업은 굴곡의 연속, 하지만 꽤 가치 있는 삶”- 김은구 아이엠게임즈 대표
김은구 아이엠게임즈의 대표는 지난 1년간의 창업 생활에 대해 “일생에 있어 가장 많은 것을 배운 기간”이라고 말한다. 최근 국가별 유저 간 순위를 경쟁하는 스마트폰 게임 ‘아스트로 플래그’를 선보인 그는 모바일 게임업계 새내기다. 국내 유명 게임사 법무팀에서 일하다 글로벌 토너먼트라는 새로운 개념을 업계에 선보이겠다는 일념으로 사업에 나서게 됐다.
법학도 출신으로 게임 사업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 그만큼 과거 법무팀 경험을 살려 대규모 토너먼트 시스템을 특허출원 하는 등 사전 준비 작업에 신경을 썼지만 창업 1년의 우여곡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회사 규모가 워낙 작고 매출구조도 튼실하지 못하다 보니 정부지원금은 받기가 어려웠으며 제대로 시작하자는 취지로 한 법인 등록 때문에 오히려 1인 창업 지원이나 창업보육센터 입주 대상에서 제외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경험했다. 금방 끝날 거라고 예상했던 처녀작 개발은 개발인력과의 불협화음으로 조금씩 연기됐고 그만큼 게임 출시를 통한 매출발생 시점도 같이 늦어졌다. 김 대표는 “지난 1년간의 경험에서 사업을 뒷받침할 정보와 회사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코어인력 확보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한다.
때로는 말로만 듣던 ‘갑’과 ‘을’의 관계를 몸소 체험하면서 대기업 구성원으로 있을 때 느껴보지 못했던 벤처기업의 설움을 느껴보기도 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항상 끌려가는 입장이다 보니 참신했던 아이디어가 대기업 한마디에 수정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김 대표는 대기업 외주작업도 장점이 있겠지만 창업기업으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보다는 자체 프로젝트를 스스로 진행하는 것이 낫다는 평가다.
창업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게임 개발이 늦어지면서 자금난을 겪었을 때는 “길을 잘못 선택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다르다. 현실에 안주하는 평이한 과거보다는 굴곡이 있지만 시장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헌신하는 지금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때문에 많은 장애물을 거쳤지만 1년 전 세웠던 김 대표의 ‘혁신적이고 국제적인 게임 개발’이라는 창업목표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대기업들과 다른 시각에서 현상을 바라보면 업계의 고정된 틀을 깰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것이 벤처의 힘이라고 믿고 있다. 올해 그 시작인 ‘아스트로 플래그’를 선보이고 곧 각각 1개의 피처폰 게임과 스마트폰 게임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그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김은구 대표는 “인력과 자금 면에서 분명 대기업은 유리한 점이 있지만 프로젝트 성공가능 여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확실한 비전과 이를 함께할 동료가 있다면 벤처기업도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소박스>
◇“창업 육성의 이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1인 창업은 혼자서 창업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표 한 명, 개발 한 명, 영업 한 명, 관리 한 명 등 각 필요 직종에 한 명의 전문 인력을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진정한 1인 창업입니다.”
얼마 전 한 벤처기업 CEO와의 대화에서 나온 얘기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나온 한마디였지만 꽤나 수긍이가는 말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처럼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창업에 나서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된 창업 1년 기업들도 인력문제로 꽤나 골치를 썩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창업기업의 인력수급은 자금난과 달리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준다 해도 굳이 갓 창업한 기업에 취직을 하려는 젊은이들은 극소수다. 주변에선 창업기업의 생존법으로 차별화된 기술력을 떠들지만 이 기술력 확보의 필요충분조건인 우수인력부터가 영입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연구개발 지원, 창업비용 지원 등 자금 관련뿐만 아니라 인력수급까지 포괄하는 더욱 입체적인 정부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중소기업 대상 인력양성 프로그램은 대부분 엔지니어 및 개발자 중심으로 진행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창업 후 스타트업 기업들에는 영업, 마케팅, 회계 등 다양한 직종의 인력이 필요하다. 창업 1년, 2년 단계별로 필요한 맞춤형 지원과 인력을 제공하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는 이유다.
창업자들 역시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무모함보다는 시장을 조사와 창업지원 정보를 다수 입수하고 구체적인 단계별 계획과 목표를 짜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가족과 같은 직원을 원하면서 인턴 채용하는 관습은 버리고 직원들과 명확한 비전을 공유할 때 정부의 지원도 빛이 날 것이다.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창업=투스타(이별)’라는 농담이 오고간다. 창업을 하게 되면 지인들과 이별하게 된다는 의미다. 정부는 부처별 기관별 중복되는 지원을 지원 사각지대로 돌리고 창업기업은 냉정함으로써 사업을 진행할 때 창업 육성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
조정형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