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출연연 선진화 체계 구축을 위해 추진해온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은 2년째 지지부진하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는 각 부처의 이기주의로 인해 반쪽으로 전락할 위기다. 우리나라 기초과학 육성사업의 핵으로 불려왔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는 입지 선정을 놓고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지역별 이기주의의 볼모로 전락했다. 이 와중에 ‘과학기술계의 굴욕’으로 불리는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장이 줄줄이 중도 사퇴하면서 연구원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진흙뻘에 빠진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출연연이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 3회에 걸쳐 심층 분석했다.
<상>쳇바퀴도는 정부정책
국내 우주 개발 사업을 이끌어온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의 중도사표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고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와 연관지어 과학기술계가 바라보는 시각은 싸늘하다 못해 찬바람이 돈다.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A출연연 기관장은 “요즘엔 기관간 기관장간 연락도 거의하지 않고 지내는 형편”이라며 “자칫 삼삼오오 모여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오히려 기관에 큰 영향을 미칠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가급적 꼭 필요한 사항이 아니면 연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연연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출연연은 지난 1960년대 KIST를 필두로 현재 40여개에 이른다. 그러나 기관 소속은 각 부처에서 시작해 과기부로 통합된 뒤 국무조정실과 연구회, 과기혁신본부 등을 거쳐 다시 각 부처로 배속됐다. 그러다보니 자율적인 연구보다는 정부 예산에 좌우되는 수동형 구조에 익숙한 상태다.
최근엔 융·복합 연구가 주목받으면서 인력 유동성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지만 구조적 한계로 아직 명확한 답을 못 찾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출연연선진화추진기획단’을 통해 국과위 출범 전에 출연연의 구조개편 작업을 전체적으로 조율키로 했다. 유명희 청와대 미래전략기획관은 지난 1월까지 출연연 개편방향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기획단은 뚜렷한 합의 없이 회의를 마쳤고 결정권을 쥔 청와대도 지금까지 명확한 방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당초 기획단은 몇 개 연구기관만 정부 부처 직할로 남기고 나머지 10여 개 기관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아래로 옮겨 단일 법인화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꼽았다. 하지만 현장 연구 인력이 단일 법인화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방향을 잃고 있다.
특히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은 MB정부 들어서도 과학계를 내내 술렁이게 만들었던 핵심 현안이다. 연구원 정년연장과 성과인센티브제, 과제 발주, 인력 수급 등 난제도 여전히 산적해 있다.
출연연 관계자는 “거버넌스 개편이 출연연에 대한 길들이기 일환이든 아니든 해야할 일이라면 빨리 해치워야 다음을 보고 진도를 나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런 상황이 좀 더 지속된다면 출연연은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현재 기획단에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각 부처의 의견을 조율하느라 출연연 구조개편에 대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며 “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하는 구조개편이 아니라 이번에는 제대로 된 구조개편을 위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출연연 주요 변천사>
연도 내용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1973년 ‘특정연구기관육성법’ 제정, 16개 출연연 설립
1980년 각 부처 산하 출연연 9개 출연연으로 통폐합, 과학기술처 산하로 이관·관리
1996년 연구책임자 책임 권한 확대 위한 PBS(연구과제 중심 인건비 제도) 도입
1999년 연구회 체제 출범, 기초·산업·공공기술연구회에 소속돼 국무조정실이 관장
2004년 과학기술혁신본부 출범, 3개 연구회 과기부로 이관.
2008년 기초기술연구회 교과부, 산업기술연구회 지경부 이관. 공공기술연구회 폐지
2011년 출연연선진화기획단이 출연연 구조개편 작업 추진.
박희범,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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