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휴대폰 한글자판 입력 방식 표준화에 우물쭈물하는 사이 중국 정부가 조만간 조선어 입력방식 표준을 정하는 등 이른바 ‘한글공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학계는 표준화를 놓고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한글 주권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높아졌다.
1일 한국어정보학회·중국조선어정보학회 등에 따르면 중국은 오는 5일 시작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조선어(한글)와 중국어를 포함한 6대 법정문자의 자판 입력방식 표준화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 발의키로 했다.
현룡운 중국조선어정보학회 회장은 “법정문자의 자판 입력방식 표준화는 기초 소프트웨어 분야의 오퍼레이션 시스템 진흥 계획에 포함된다”며 “추가로 R&D 전용자금이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에서 요청에 따라 편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인대에서 조선어 등 6대 법정문자 표준화는 중국의 대규모 IT산업진흥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핵고기(核高基)’라고 명명된 이번 프로젝트에는 △핵심전자부품(핵) △중국산 고성능 칩(고) △기초 소프트웨어(기)의 주요 전략이 담기고 자판입력 표준화 사업은 ‘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이번 프로젝트에 5년간 중앙정부에서 385억위안, 각 지방정부에서 1000억위안을 투입하는 등 우리 돈으로 총 21조7445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중국이 이처럼 ‘한글공정’에 속도를 내는 사이 우리 정부의 표준화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심으로 일반 휴대폰은 ‘천지인’ 방식으로 단일표준화하고 스마트폰은 ‘천지인’ ‘나랏글’ ‘SKY’ 등 3가지 방식을 복수표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1단계 표준화에 대해 업계 합의가 진행 중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1단계 표준화를 올해 상반기까지 완료한 후, 내년 표준화 전략포럼 지원대상을 선정, 운영하면서 2012년 상반기에는 미래형 한글 문자판 표준안을 도출하는 2단계 표준화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늦장 대처로 인해 2012년부터 표준화 산업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중국 정부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특정 기업의 방식을 표준으로 채택하는 것에서부터 업계 간 합의도 원만하게 이뤄지기 힘들 뿐더러, 현재의 입력방식들로는 국제 표준화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간치환변통’ 방식의 새로운 표준화 방안을 내세우고 있는 진용옥 한국어정보학회장(방송통신학회장)은 “기존 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식으로는 옛글도 표현할 수 없을 뿐더러 글로벌 규격과 매칭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며 “국내서 사용하긴 적당하지만 한글 세계화를 위해선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