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한 오피스텔 주차장 지붕 때문에 게임 심의를 못 받았습니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항상 기존 제도와 충돌한다. 글로벌 오픈마켓도 예외는 아니다. 1월 초 정덕영 바르시아스튜디오 대표(39)는 입주한 건물 주차장 지붕이 구청에서 불법 건축물로 지정돼 게임제작업체 등록에 실패한 사연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 사연은 과도한 심의제도가 1인 개발자의 제작 환경을 가로막은 대표적 피해 사례로 주목받았다. 사람들은 “국내에서는 해외처럼 창고 창업이 불가능하다”며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의 탄생은 국내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그 사건을 계기로 각종 인터뷰 및 게임 자율심의 관련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그가 지난해 해외 앱스토어에 게임을 등록할 당시에는 이런 난관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해외 앱스토어에 등록할 때는 서류는커녕 클릭 몇 번만 하면 전 세계 앱스토어에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이런 세금이 추가로 붙는다는 확인창이 한 번 더 떴을 뿐, 이 정도로 까다롭지 않았죠.”
정 대표가 개발한 아이폰용 디펜스게임 ‘R.O.S.M’은 이미 국내를 제외한 해외 앱스토어에 먼저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이 게임은 추천 메뉴에 등록돼 북미 앱스토어 인기게임 50위에도 올랐다. 국내에서 정 대표의 발목을 잡은 것은 까다로운 행정절차를 요구하는 사전심의제도였다.
얼마 전 그가 만든 게임은 심의를 통과해 국내 앱스토어에도 출시됐다. 입소문을 타며 유료 다운로드 5위에 오르는 등 의미 있는 성과도 얻었다.
정 대표는 평범한 게임 개발자 출신은 아니다. 그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게임 개발이 아니라 게임이나 영화, CF의 컴퓨터그래픽, 영상 후반작업 등의 일을 주로 했다. 그는 영화 ‘얼굴 없는 미녀’의 후반작업을 통해 대종상 영상기술상도 받았다. 지금도 스튜디오에서는 CF와 영화의 컴퓨터그래픽 등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정 대표는 게임 개발을 시작한 것은 창작 욕구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영화 후반작업을 해도 스크롤에 내 이름이 올라가고 보람을 느꼈지만 온전한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창작 욕구에 늘 목말랐다”고 말했다.
앱스토어, 안드로이드마켓 등 콘텐츠 생산자와 사용자가 직접 만나는 글로벌 오픈마켓의 등장은 정 대표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다. 그는 게임을 직접 기획하고 내놓는 과정을 통해 창작의 즐거움과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새로운 게임 개발을 준비 중이다.
정 대표는 자신이 규제의 피해자나 자율심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사양했다. 또 규제라는 벽에 갇히지 말고 더 큰 시장을 내다볼 것을 동료 개발자들에게 주문했다. 그는 “제가 겪은 일 외에도 많은 개발자가 심의와 관련해 다양한 고민과 문제를 겪을 것”이라며 “계속 도전하고 두드려야 어떤 문제나 장애물이 있는지 알 수 있고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의 벽도, 직업의 한계도, 새로운 콘텐츠의 출현은 막을 수가 없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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