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자본환원율 기준 상향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피합병 회사를 설득하는 데 힘이 많이 들었다.”
16일 국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처음으로 인수합병(M&A) 사례를 도출한 대신증권(대신증권그로쓰알파기업인수목적) 고위관계자 설명이다.
스팩 업계 최대 불만은 피인수 회사 가치를 낮추도록 한 ‘자본환원율’이다. 스팩을 포함, 상장사가 비상장사 합병 시 적용되는 것으로 지난해 말 자본환원율의 예상치 못한 개정으로 한창 인수전을 펼쳐야 할 스팩 담당자 상당수가 손을 놓은 상태다. 인수전이 진척됐다가 자본환원율 기준으로 인해 깨진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상장사 기업에서 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못하자 협상이 결렬되는 것이다. 모 스팩을 운영하는 대표는 “100곳을 찾으면 4~5개가 기준에 맞는 정도”라고 하소연을 할 정도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준 개정으로 스팩 입장에서는 인수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업계 실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다. 좋은 기업은 그에 걸맞은 좋은 가치를 줘야 한다는 것이 스팩 운용사 입장이기 때문이다. 인수 시 기업가치 산정을 낮추도록 한 규정은 결국 스팩과 인수대상 비상장사 모두에게 규제가 되고 스팩 제도 활성화를 막는 것이다.
A스팩의 대표는 “정상적으로 IPO(상장) 가능한 상태에서 청구 시 기업가치가 1만원 나올 회사가 자본환원율에 따라 합병 시 6000~7000원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설득해 합병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이어 “이 기준을 적용하면 굴뚝기업은 그나마 가치가 괜찮지만 신성장동력 등 유망한 업종 회사는 제대로 가치가 나오지를 않는다”며 난감해했다.
자신이 피땀 흘려 키운 회사를 넘겨야 하는 기업(비상장사) CEO들은 이런 상황을 알면서 협상에 적극 응할 리가 없다. 스팩이라는 새로운 제도에 관심을 보였던 기업들이 이 때문에 발을 빼는 형국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난해 스팩 설립 이후 몇 개 기업과 M&A 작업을 추진하다 11월 이후 기업가치 산정 문제에 부딪혀 오히려 IPO로 발을 돌리고 있다”며 “스팩이란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놓고 IPO란 상품보다 오히려 서비스 수준이 낮다면 소비자는 이를 외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털어놨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스팩 활성화 의지가 있다면 자본환원율 기준을 돌려놓거나 또는 스팩에 한해서는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는 요구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 성장성이 뛰어난 우량기업은 스팩 인수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팩 대표는 “바뀐 자본환원율 기준에서는 스팩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외국에도 그런 제도는 없다”고 재검토를 요구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자본환원율 기준 강화 계기가 된 네오세미테크는 분식회계가 문제였다. 스팩 운영자들은 전문가집단으로 견제장치가 확실하다”면서 “일반 상장사와 똑같은 범주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호·김준배·이경민기자 jholee@etnews.co.kr
<용어설명>자본환원율=비상장사 미래추정이익을 현재가치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하는 할인율이다. 자본환원율이 낮으면 수익가치가 커지고, 높으면 기업의 수익가치는 작아진다. 지난해 11월 말 금융감독원이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해 기준을 높였다. 금감원은 자본환원율을 ‘해당기업의 차입금 가중평균 이자율의 1.5배’와 ‘상속증여세법상 할인율’중 높은 비율로 적용하도록 했다. 상속증여세법상 할인율이 현행 10%인 것을 고려할 때 최소 10%가 되는 셈이다. 종전 자본환원율은 ‘4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최저이율의 단순평균치의 1.5배’로 약 5%였다. 종전과 비교해 최소 두 배 높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