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핵분열한 일본의 `안전신화`

 ‘안전제일 일본’을 내세워 원자력발전의 르네상스를 끌어가던 일본이 1000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진도 9.0의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휘청거리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방사능 누출 공포가 일본 열도를 넘어 전 세계를 ‘핵아노미’ 상태로까지 몰고 있다. 이번 주가 고비로 보인다.

 사실 원자로의 안전장치는 5중으로 돼 있어 웬만한 지진에는 끄떡없다. 원자로 내에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는 팰릿(우라늄 소결체)이 제1방호벽 역할을 하고 연료봉이 핵물질의 방출을 막는 두번째 방호벽 역할을 한다. 그 다음이 25㎝ 두께의 원자로 용기다. 원자로 용기를 싸고 있는 6㎜ 철판이, 마지막으로 120㎝ 두께의 콘크리트 벽이 방사능 누출을 막는다.

 이 콘크리트 벽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날아가고, 연료봉의 핵분열을 지연 또는 감속하지 못해 열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연료봉을 싸고 있는 금속피복관(지르코늄합금)을 녹이면서 방사능 누출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금속 피복관은 대략 1000℃에서 녹는데, 핵분열 때 온도는 3000℃나 된다.

 일본에서의 원전사고는 전에도 있었다.

 지난 1999년 우라늄 재처리 시설에서 제어불능의 핵연쇄 반응으로 인해 직원 2명이 숨지고, 방사성 중성자가 전국으로 누출됐다. 2003년에는 도쿄전력이 일부 원자로 구조물에 균열이 있다는 보고서를 은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원자로 17기의 가동을 일시 중단시켰다. 2004년에는 원전 증기누출로 4명이 숨졌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미 원전 사고는 예견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항간에는 이번 사고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 국민과 일본 정부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은 반면, 대응이 너무 느려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고를 인지하고 모여 논의한 뒤 다시 위로 보고하고, 그렇게 몇 단계 보고를 거치다 보면 몇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 실제 후쿠시마 원전사고 보고가 1시간이나 늦게 보고돼 해당 장관이 불같이 화를 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보면 일본의 대처 속도는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뭐든 모여서 회의해야 하고, 단계를 밟아 하나하나 풀어가는 일본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만약 우리가 일본과 유사한 규모의 대지진과 쓰나미를 맞았다면 재산손실은 말할 수도 없고, 인명피해는 족히 10배는 더 될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일본보다 우리가 안전대책에 훨씬 더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대전에서 열렸던 ‘제23회 국제원자력기구 핵융합에너지 콘퍼런스(IAEA FEC 2010)’에서 베르나르 비고 프랑스 원자력위원장이 했던 말이 또렷하다.

 “프랑스가 UAE 원전 4기 수주에 실패한 원인은 제조나 부품공급, 교육 등이 포괄적이지 못했고, 다른 하나는 안전을 최우선하기 때문에 비용이 높게 책정돼 있다”는 말이었다.

 일본 원전문제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 것인지가 현안으로 대두될 전망이다. 원자력이 녹색산업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후순위다.

 정부도 조만간 국내서 가동 중인 원전 21기 전체에 대한 안전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원자력 에너지 정책의 제1순위는 기술개발보다 안전대책 연구가 우선됐어야 했다.

 박희범 부장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