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벌여주진 못하더라도 깨지는 말아야’
금융당국이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제도를 실패로 몰아가고 있다. 제도를 열어준 것도 금융감독 당국이고,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금융감독 당국인 우스꽝스러운 구조다. 스팩에 주어진 시간은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당국은 투자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자본환원율 상향 이유를 대고 있지만, 이것 자체가 시장논리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한 스팩 운용사 사장은 “외국은 주식투자의 기본 방향이 투자자 책임인데, 우리는 투자자보호 원칙을 그 앞에 세운다”며 “정식 상장사(스팩)가 비상장사를 M&A하는 데, 충분히 전문적이고 정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데도 감독당국은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한다면 스팩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스팩 사장도 “상장기업인 스팩은 피인수기업이 터무니없는 기업가치를 부르면 전문가 수준의 평가 툴을 갖고 있고, 너무 높을 때는 합병할 가치 자체가 없어져 견제장치가 확실한데, 여기에 일반 기업이 우회 상장할 때와 똑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며 “지금이라도 스팩은 자본환원율을 이전 상태로 낮추거나 예외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009년 12월 내놓은 스팩 제도 설명문에서 ‘스팩의 신속한 상장을 위해 심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할 예정’이라고 명시했지만, 이 또한 사문화됐다.
스팩을 통해 상장할 경우에도 심사기간을 단축해주기는커녕, 간소화하지도 않은 것이 제도 파행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일률적인 정책 적용이 규제의 용이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시장은 망쳐놓았다. 부실사례 몇몇을 걸러내기 위해 스팩은 물론이고 M&A 시장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스팩이란 제도가 우회상장 기업에 길을 열어주고, M&A시장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제도인 만큼 도입 초기에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기존과는 다른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예외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투자자에게 혼란을 부추긴다지만 사실, 예외 규정을 적용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최근 신성장동력기업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상장조건 완화 조치도 예외 적용의 한 사례다. 규제 장치의 탄력적 적용과 함께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늦었지만, 스팩을 활성화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어렵사리 성사된 대신증권그로쓰알파스팩의 터치스크린 패널 제조업체 썬텔 M&A를 분위기 반전의 지렛대로 만들려는 정책적 의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탄력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 운용을 통해 우량기업에 상장 기회를 활짝 열어주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이진호·김준배·이경민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