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도 엔지니어의 입사 선호도가 가장 높은 기업은 LG전자였다.
LG전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우수인재를 확보는 데 근무 여건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LG전자는 현재 서울에만 5개의 대형 R&D센터를 운영 중이다. 30년간 유지돼온 수도권 과밀화 억제정책 때문에 다른 대기업들이 연구소를 서울에 두지 못하는 사이 미리 운영 중인 우면동 R&D센터를 통해 우수인력을 유치했다. 90년대 이후 서울대 연구센터, 가산모바일핸드셋 R&D센터, 백색가전을 연구하는 가산 R&D캠퍼스, 소프트웨어·시스템반도체 등 미래 IT를 연구하는 서초 R&D캠퍼스 등 서울에 잇달아 대형 R&D센터를 구축했다. 경기도 수원과 기흥, 충남 탕정 등에 연구소를 두고 있는 경쟁사에 비해 유리한 이유다.
이러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최근 LG전자의 위기는 R&D로부터 시작됐다. 애플 아이폰의 위력을 실감한 삼성전자는 늦게나마 자사 R&D역량을 총 동원해 갤럭시S라는 대항마를 내놓았지만 LG전자는 이보다도 6개월 후에야 제대로 된 경쟁 제품을 출시했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으로 대변되는 휴대폰 반도체 기술도 없었고 안드로이드 운용체계를 꿰뚫는 엔지니어도 부족하다보니 대응이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스마트TV 제품에서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불과 한 두 달 차이로도 승부가 좌우되는 IT산업 특성상 LG전자의 어려움이 왜 왔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LG전자 R&D의 위기는 지난 몇 년 간의 마케팅 우선정책에서 기인한 바도 크다. 디자인력과 마케팅력으로 승부한 초콜릿폰이 성공하자 R&D는 후순위로 뒤처졌다. 시스템반도체를 비롯한 선행 R&D의 중요성은 간과되기 일쑤였다. 자체 기술력 확보보다는 외부 기술 소싱 능력이 더 필요한 경쟁력으로 여겨졌다.
후배사원을 책임지고 가르치는 도제시스템도 약화됐다. 멘토와 멘티로 끈끈하게 이어졌던 선후배 관계는 하루하루 서로 바쁜 업무 탓에 소원해졌다. 선배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다보니 애써 확보한 우수인재가 평범한 인재로 바뀌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한탄도 들린다.
임원 승진에 어려움을 겪는 R&D 인력을 우대하기 위한 취지에서 도입된 연구위원제도가 오히려 R&D 임원 승진을 제한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전체 임원 승진자 231명 가운데 35%인 80명이 연구임원인데 비해 LG전자는 총 35명의 승진자 가운데 연구관련 임원은 14%인 5명에 불과하다. 상당수 R&D 인력이 승진 가능성이 높은 연구위원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실제 임원승진에서는 R&D 전문가들이 소외받고 있다. 연구위원은 임원급으로 대우해준다는 얘기지 직급은 부장이다. 주요임원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회사 주요정책이 결정되는 경영회의에서 R&D의 소리는 줄어들고 마케팅, 제조의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LG는 올해에만 R&D 인력을 5000명 가까이 채용하고 R&D 투자도 1조원 이상 늘리기로 했다. R&D를 강화하겠다는 최고경영진 의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효과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인재육성시스템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기술의 LG’는 신기루에 그칠지도 모른다.
유형준 전자담당 차장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