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해부터 이미 준비하고 있었는데….’
1기 방송통신위원회 3년간 수도 없이 들은 방통위 공무원들의 탄식이다. 이미 내부 국장급까지 논의를 끝냈건만, 뒤늦게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해 준비에 들어간 타 부처가 자신들이 준비한 부분까지 포괄한 ‘○○○ 중장기 계획’으로 로드맵을 공표할 때마다 탄식은 되풀이된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일까. 대부분의 방통위 공무원들은 ‘위원회 조직의 한계’라는 말로 모든 원인을 대신한다. 또 상임위원들에게는 첨예한 정치적 방송 이슈가 더 큰 관심사라는 점도 덧붙인다.
실제로 방통위 공무원들은 규제와 진흥을 모두 담당하는 행정부처이면서도 독특한 위원회 구조라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1기에 대한 전반적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방통위는 정책결정의 속도가 어느 산업보다도 중요한 ‘IT 주무부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1기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낸 이병기 서울대 교수는 위원회 조직으로서의 방통위 단점으로 ‘핵심 업무 처리의 지연’을 꼽으면서 “IT 진흥업무를 차질없이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안 강구가 대한민국의 국제경쟁력과 연결된다”고 강조한다.
사실 방통위 공무원들은 사실 어떤 정책 하나를 펴기 위해, 독임제 타부처 공무원보다 5배 공을 들여야 한다. 일단 5명 상임위원(장)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하고, 또 의견 수렴이 안 되면 티타임을 거쳐 다시 의견을 조율하고 또 다시 보고서를 작성하고, 다시 전체회의에 보고하고. 이 과정에서 IT 진흥업무는 시기적으로나 타 부처와의 업무 조율 측면에서나 실기하기 일쑤다.
2기 방통위가 1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상임위원(장)의 전문성을 살린 업무 분담 △핵심 진흥업무의 실국장 전결 처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1기 방통위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사무총장제’를 강하게 밀어부쳐야 한다.
사무총장제는 의사결정 시간을 줄여 진흥정책의 추진을 효율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IT정책과 합의제 위원회 구조’라는 엇박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또 타 부처와의 정책 조율이 사무총장(차관급) 선에서 가능해져 IT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문제점도 최소화할 수 있다.
2기를 연임하게 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이같은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학습(?)이 끝난 수장이다. 1기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모두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비전 확립을 위한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사무총장제 도입은 정치적 이슈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만큼 외풍에 굳건히 맞설 수 있는 위원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크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방통위를 수직적 조직에서 미국 FCC와 같은 수평적 조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효율적 업무 추진 차원에서 고려해 볼 만하다. 이는 현재의 방송·통신·네트워크국으로 나눠진 구조를, 방송통신 융합 흐름에 맞게 콘텐츠·네트워크 등 수평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를 정착해가는 과정에서 자칫 불필요한 이슈가 제기될 수 있어, 현 상태에서 방송과 통신이라는 구분 때문에 같은 업무임에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분야만을 정리하는 절충안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전파관리소의 광역화도, 3단계의 의사결정구조(방통위 본부, 중앙전파관리소, 지방전파관리소)를 2단계(방통위 본부, 지방전파관리소)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정책 결정의 속도를 높이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