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지진나면…아찔한 통신 無대책

높이 20m가 넘는 해일이 한반도 동쪽에 닥치고 있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해안가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단 10분. 이 상황을 어떻게 알려야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에서 재난 방송이 준비되고 소방방재청에서 사이렌 경보를 울리기까지는 5분이 소요된다.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 반토막 나는 것.

김사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부연구위원은 "가장 효과적으로 재난 상황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국민 대부분이 갖고 있는 휴대폰을 통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내 휴대폰 재난경보 전달체계가 부실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일본 대지진 사태로 긴급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통신수단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는 국민 개개인에게 재난 상황을 알릴 방법이 없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천재지변, 전쟁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국민 경보는 지상파 방송, 라디오 등 방송과 소방방재청의 민방위 경보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방송이나 사이렌 경보를 접하지 못하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재기관이 재난 지역 사람들에게 보내는 재난문자방송(CBS)은 휴대폰 이용자의 60%에 전달이 안 되고, DMB를 통한 재난 방송은 관련 법이 마련되지 못했다. 국가 행정기관이 재난상황 파악, 복구 등에 이용하기 위한 국가재난망 역시 몇 년째 표류 중이다.

소방방재청이 이동통신사와 협력해 재난상황을 휴대폰에 문자로 발송하는 CBS는 3000만명이 넘는 3G(세대) 휴대폰 이용자에게는 전달이 안 된다. 1900만명 정도의 2G 이용자만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사가 3G 휴대폰에 CBS 기능을 탑재할 경우 배터리 소모량이 최대 10배까지 늘어난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 긴급 재난 발생지역에 국지적으로 빠르게 전달해 높은 재난 대비 효과를 거뒀던 이 서비스가 막히면서 재난 통신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4G 휴대폰에는 이 기능을 반드시 탑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통사, 소방방재청, 학계가 모여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또 국내에서 출시되는 거의 모든 휴대폰에 탑재된 DMB 방송 기능을 활용해 재난 상황을 알리려는 노력도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서 지연되고 있다. 터널, 산악 지역 등에 DMB 망을 구축하기 위한 예산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9년째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국가재난망도 문제다. 통합망은 행정기관이 재난 예방, 복구, 현장 대응 등을 위한 무전기 사용에 쓰는 망이다.

이 사업은 2007년 기술 방식 결정 과정에 대해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아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김사혁 KISDI 부연구위원은 "아직 큰 국가 재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난 통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본 사태를 거울 삼아 우리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어

재난문자방송(CBS, Cell broadcasting service) : 재해발생 예상 지역에 있는 휴대폰 이용자들에게 기지국을 통해 긴급하게 재난정보를 전송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소방방재청은 태풍, 호우,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심각한 재난이 발생할 때 해당 지역 국민에게 재난문자를 전송한다.

[매일경제 황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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