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제3 문화

 지식에 접근하는 새로운 틀로 ‘제3 문화’라 일컫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이 지식인 사이에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제3 문화란 찰스 퍼시 스노가 ‘두 문화’란 책에서 지식인 세계를 두 문화권, 즉 문예 지식인과 과학 지식인으로 나눈 데서 따온 표현으로 지식, 지적 굶주림에 대한 또 다른 열망이다. 제3 문화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으로 나뉜 기존 지식세계의 틀에서는 더 이상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출발했다.

  제3 문화를 주제로 2006년 발간된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에서 저자 존 브록만은 “이 새로운 문화는 경험세계에 토대를 둔 과학자와 그 밖의 사상가들로 이뤄져… (기존) 전통적인 지식인과 달리 자신들의 작업과 저술을 통해 우리 삶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 보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를 새로이 정의하는 일을 떠맡고 있다”고 표현했다.

 책에는 진화생물학자 헬레나 크로닌, 철학자 대니얼 C 데닛, 생물인류학자 리처드 랭검, 컴퓨터 과학자 로드니 브룩스, 인지과학자 앤디 클라크 등 신인문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제3 문화 지식인들이 나온다. 이들은 인간 본성, 동물의 마음, 연산, 소프트웨어, 생명체 같은 시스템, 최후의 컴퓨터 등 다양한 연구 주제를 대상으로 심리학과 생물학, 경제·경영학, 물리학 등 인문·자연과학을 넘나들며 어느 한쪽에 의한 편견을 비판하고 서로에게 배우며 왜 제3의 문화적 사고가 필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현대 산업과 사회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적절한 융합적 사고를 필요로 한 지는 꽤 됐다. 인문학이 자연과학을 ‘주관 없는 지식’으로 폄하하고, 자연과학은 인문학을 ‘실체 없는 지식’으로 깎아내렸던 것은 지난 일이다.

 산업은 물리, 화학, 생물과 전기, 전자, 컴퓨터 등 독자적으로 오랜 기간 이어져온 해당 분야의 기술과 지식을 이제는 서로 보완해야 발전할 수 있는 시대에 직면했다. 또 인간 사회는 인터넷, 네트워크, SNS 확대로 이미 전통적인 인문, 사회학적 연구범위를 넘어선 상태다. 단적으로 뇌 탐구부터 지능형로봇 연구는 의학과 생물학, 심리학과 철학까지 자연과학과 공학, 인문학이 연결고리처럼 연계돼 있다.

 경제와 경영의 이론마저 단순 수요와 공급에 관한 논리를 넘어 기술개발, 사회 환경의 변화, 인간 가치관의 변화까지 고려요소로 도입하고 있는 중이다. 거꾸로 어느 한 쪽 분야의 제한된 틀에서 규정되어 나온 연구, 주장, 또는 성과는 또 다른 한편의 비판과 함께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 일쑤다.

 21세기 최대 어젠다로 떠오른 융합(컨버전스) 또한 이공계에 뿌리를 둔 산업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IT에서 BT, CT, NT와 MT(마린 테크놀로지)까지 현재 신성장 융합기술로 불리는 분야는 미시적 융합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은 이 세계와 사회, 인간이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광범위한 대상을 연구하면서 이에 대한 관점과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거시융합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세계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3년여의 연구 끝에 ‘OECD 혁신전략’을 마련해 내놓았다. 5개 분야(인적자원과 기업, 지식, 거버넌스, 글로벌 사회적 문제) 정책원칙(Policy Principles) 아래 제시한 이 혁신전략에는 ‘비기술적 혁신(Non-Technological Innovation)’이라는 주목할 만한 언급이 나온다.

 전통적인 기술혁신 이외에 조직구조의 변화, 마케팅, 교육환경 같은 비기술적 혁신과 기계장비 등 유형적 투자 외에도 인적자본 등 무형적인(intangible) 투자 역시 생산성 향상의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신기술 개발 일변도에서 벗어나 폭넓은 교육과 환경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술의 다양한 응용과 활용성을 높이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근 첫 박사를 배출한 카이스트 문화기술융합대학원은 과학기술, 인문학, 예술, 디자인 등 다양한 학문 분야 간의 교류를 촉진하고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융합이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관점 아래 설립됐다.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섭렵할 때 더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른 ‘성공하는 기업 CEO가 되기 위한 조건’을 다룬 책들은 공통적으로 기술과 마케팅에 각종 인문사회적인 지식까지 두루 갖춘 인물을 성공 CEO로 꼽고 있다. 이처럼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을 주장하고 이를 토대로 생산하는 각종 지식과 주장 또한 언젠가는 또 다른 일개 학파쯤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새로운 시도고 우리 지식의 폭을 넓혀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과 사회,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 아닐까.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