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존 헨겔은 어느 날 한 싱글맘과 대화를 하다 깜짝 놀랄 일을 접하게 됐다. 사형수 남편을 둔 그녀에겐 아이가 여럿 있었는데,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인근 슈퍼의 쓰레기통을 뒤져 살고 있었던 것이다.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에요. 다만 쓰레기통에서 줍는다는 게 조금 그렇지만요.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어디 다른 곳에 놓아 주면 좋을 텐데.”
헨겔은 그 길로 슈퍼를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먹을 수는 있지만 팔 수 없어 버려야 하는 식품이라면 차라리 기부해 달라.”
푸드뱅크 운동의 시작이다.
신간 ‘한 끼의 권리’는 존 헨겔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출발한 푸드뱅크에 대한 이야기다. 푸드뱅크의 탄생 배경과 정착 과정, 해외 진출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푸드뱅크는 모양이 훼손되거나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혹은 다 먹을 수 없어서 버려질 음식들을 기부받는 곳이다. 이렇게 모은 음식을 먹을 것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푸드 뱅크는 1967년 미국에서 처음 생겼고, 2008년 200여개로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 푸드뱅크가 시작됐다.
푸드뱅크는 당장의 배고픔만 때워 주는 ‘반창고’ 역할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물에 떠내려 오는 아이들이 수영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게 푸드뱅크 운동가들의 반박이다.
저자는 굶주림에 맞서는 한 방법으로 푸드뱅크를 제안하고 있다. 굶주림에 대해 장기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분명 필요하지만, 눈앞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들을 구제하는 일 역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거니까, 어려운 사람이니까 전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받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아사히신문 출신 프리랜서 작가다.
오하라 에쓰코 지음, 최민순 옮김, 시대의 창 펴냄. 1만3800원.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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