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중문화 전문가 버지니아 헤퍼난은 4월 9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20세 여대생 미스 가브리엘라의 일상을 소재로 인터넷 사용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통렬히 비판했다. 가브리엘라는 새벽 4시까지 구글로 검색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글을 올린다. 웹코믹스에서 만화를 보고 네오펫 게임을 즐기다가 노트북을 안고 잠든다.
헤퍼난은 가브리엘라가 허드렛일을 소홀히 하고 불면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인터넷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오페라나 시를 좋아하면 정열적이고 체스와 프리스비, 조지 오웰의 소설 대신에 인터넷 게임을 즐기면 중독 여부를 검사하자고 하는 접근은 비합리적이며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영화나 소설의 탐닉을 금기시하다가 용인했던 과거 사례처럼 인터넷 검색에 빠지는 현상을 사건으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을 결합해 산업적 성과를 만들어 내기로 유명한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 대중문화기술센터 ETC의 공동 설립자 도널드 마리넬리를 최근 한 신문이 인터뷰했다. 그는 “세상은 연극무대고 모든 사람은 배우다. 우리의 존재는 이제 연극보다 비디오 게임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디지털 웹 기술은 가상현실 중독, 악성 루머와 사생활 침해를 유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중독이나 타인에 대한 험담은 새로운 기술과 상관없이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악이다. 게임에 빠진 아이는 야단치면서 독서 중독에 빠진 아이는 왜 야단치지 않는가. 첨단기술이 모든 악을 만들어 낸 판도라의 상자라고 비판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열띤 게임 과몰입 규제 논쟁에 빠져 있다. 게임 이용자가 2000만명을 넘어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이 대표적 대중 놀이로 급부상하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한창 공부해야 할 때인 청소년의 게임 이용에 관한 규제 입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정점으로 치달았다. 16세 이하 모든 청소년은 자정부터 이튿날 6시까지 온라인게임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조항이 법안의 핵심이다.
불가피한 강제적 조치라고 강변할 수는 있겠으나, 공부만 할 수는 없기에 다른 부작용이나 우회 수단, 그리고 지하화의 위험이 불 보듯 뻔하니 걱정은 커가기만 한다.
2009년 약 98만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5838명이 죽고, 149만8344명이 부상을 당했다. 1분 30초당 1명이 다치고, 90분마다 1명씩 사망한 셈이다. 그렇다고 사고가 가장 많은 금요일 18시부터 20시까지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규제는 없다. 교통안전을 위해 어릴 때부터 지속적 교육과 캠페인을 벌이고 단속과 사후 제재를 가할 뿐이다.
헤퍼난의 기고와 마리넬리의 인터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날로그 시대가 만든 생활필수품 자동차와 디지털 시대가 만든 대중필수품 게임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그 메타포는 같다.
우리는 깊숙이 전개된 디지털 사회의 속성과 숙명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며 눈에 확 띄지 않더라도 내일의 보배, 사랑스러운 청소년들의 디지털 소비를 건전하게 만드는 일에 서둘러 투자해야 한다.
법에 의한 강제가 값싸고 즉효가 있을지 모르나 싼 게 비지떡이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에서 본격적으로 건강한 게임 소비를 가르치고, 게임이 평생의 반려임을 이해시키자. 디지털 콘텐츠 시대의 도래를 외치면서 바람직한 아비투스(Habitus)의 확립을 위한 체계적 준비에는 소홀하지 않았는가 되짚어 볼 때다.
김종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kimjongmin@gamecultu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