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스핀트로닉스(Spintronics)`

 삼성전자는 최근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부를 시게이트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후지쯔도 웨스턴디지털에 HDD 사업을 넘겼다. 웨스턴디지털 인수 규모는 43억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조8000억원에 달한다. 두 건의 빅딜이 불과 한 달여 사이에 이뤄질 정도로 HDD 분야가 요동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태블릿 등 모바일기기 확산과 경쟁 기술인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103(SSD103) 보급으로 HDD 시장이 침체기에 빠진 탓으로 분석했다. 특히 SSD는 전력 소비량이 적고 처리 속도가 우수해 빠른 속도로 HDD를 잠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HDD는 정말 한물간 기술일까.

 

 ◇재조명받는 ‘스핀트로닉스120’ 기술=결론부터 말하면 HDD는 사라질지 모르지만 활용 기술은 오히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컴퓨터 필수부품인 HDD는 ‘저장장치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디어다. 1950년대 IBM이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후 20년 만에 보급률이 40%를 넘었다. 10년 동안 보급 속도를 보면 PC·TV·자동차·전화 등 어떤 제품보다도 빠르다. 지금은 메모리에 밀려 다소 인기가 떨어졌지만 여전히 저장장치 분야의 터줏대감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HDD는 헤드와 플래터로 나눠 디스크가 회전하면서 생기는 공기흐름을 이용해 플래터에 떠 있는 상태에서 데이터를 읽고 쓰는 원리다. 플래터에 코팅된 자성체에 0과 1을 기록해 데이터를 저장한다. 기본 원리는 ‘스핀트로닉스’로 불리는 스핀 공학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90년대부터 활발한 연구가 이뤄진 스핀트로닉스는 나노와 맞물려 전자시대를 뒤이를 차세대 기술로 관심이 높다. 일부에서는 ‘전자시대’가 가고 ‘스핀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업계의 뜨거운 이슈다.

 스핀트로닉스는 ‘스핀(spin)’과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 합성어로 전자 회전을 활용한 기술이다. 나노기술 중에서 가장 먼저 사업화가 이뤄졌다. 스핀트로닉스가 부상한 데는 반도체로 대표되는 전자소자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전자혁명을 주도한 전자소자는 메모리칩이 나노 단위까지 작아지면서 간섭 현상이 심해지는 양자역학적 투과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지나친 소형화에 따른 열 방출도 아직까지 해결 못한 과제다. 여기에 반도체 메모리는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없어지는 성질, 즉 휘발성이라는 기술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전자에서 스핀시대로 이동 중=대안으로 떠오른 게 바로 스핀트로닉스다. 이는 전자의 물리적 특성인 스핀을 활용한다. 기본 원리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자석의 성질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인 ‘자성’을 기술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실제로 인류는 자석의 발견으로 문명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신비의 돌로 불리는 ‘자석(Magnet)’은 서양에서는 기원 전 2000년경에 발견됐으며 이를 발견한 목동 이름 ‘마그네스(Magnes)’혹은 발견된 지역인 그리스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동양에서는 더욱 오래됐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4000년경 자석을 발견하고 이를 ‘추스 신(Tzhu shin)’이라고 불렸다. 서로 달라붙는다는 추스 신은 ‘애석(Loving stone)’을 뜻한다. 자석의 기본 성질인 자성을 활용한 기술은 이미 실생활 곳곳에서 활용 중이다. 모터·수력발전·스피커·마그네틱 카드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구 자체가 거대한 자석이다. 북극과 남극이 의미하듯이 우리는 거대한 자기장 안에서 살고 있다. 전자도 마찬가지다. 전자운동과 함께 스핀 성질을 가지고 있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동시에 지구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듯 원자 세계에서도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공전 운동과 동시에 전자축을 중심으로 자전 운동을 한다. 전자 자전 운동이 바로 스핀인 것이다.

 ◇스핀트로닉스는 가져올 기술 혁명은=지구처럼 전자가 돈다는 사실은 1922년 독일 물리학자인 오토 슈테른과 발터 겔라흐가 처음 발견했다. 동전에 앞뒤 면이 있고 인간에도 남녀가 있듯 전자에도 두 종류 스핀 상태가 존재한다는 놀라운 학설이었다. 이후 기술적인 활용은 60여년이 지난 1988년 프랑스 물리학자 알베르 페르와 독일 물리학자 페터 그륀베르크가 ‘거대 자기저항’ 현상을 발견한 후부터다. 거대 자기저항은 전기 저항에 스핀 상태가 크게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다. 즉 스핀 상태가 서로 같은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을 때가 스핀의 반평행 상태로 배치되어 있을 때보다 저항이 훨씬 작다는 것이다.

 이미 이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M램(Magnetic)’이다. 가까운 장래에 메모리의 근본 과제를 극복한 비휘발성 메모리 M램이 떠오를 전망이다. M램은 속도에는 강점이 있는 S램, 집적도가 높은 D램, 비휘발성이 특징인 플래시의 장점을 모아 놓은 차세대 메모리다. 이미 모토로라와 사이프레스가 시제품을 내놓았으며 삼성전자를 포함한 IBM-인피니언·NEC·하니웰·HP 등이 개발 중이다. M램이 나오면 컴퓨터를 작동할 때 부팅을 기다리는 불편함 사실상 사라진다.

 궁극적으로 ‘양자(퀀텀) 컴퓨터’도 가능하다. 양자 컴퓨터147가 실현되면 현재 컴퓨터로 300년이 걸리는 계산을 단 1분 만에 해결할 수 있는 그야말로 ‘광속 시대’에 진입한다. 바이오 분야도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자성 원리로 상처 부위를 정확하게 찾고 자기장 세기로 스핀 방향을 결정해 원하는 곳에만 투약할 수 있다.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은 “지금까지 인류는 실리콘으로 대표되는 전자의 전기적 특성을 이용한 전자 혁명의 혜택을 받았다”며 “앞으로는 전자 스핀 특성을 이용한 스핀트로닉스 혁명으로 새로운 기술 문명의 이로움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