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봐도 ‘게임 셧다운제’를 추진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여론과 담을 쌓고 지내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론이 어떠한지를 이다지 모를 수 있을까.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을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외국인 친구랑 채팅 하다가 한국 게임 셧다운 제도에 대해 말해줬습니다. 그러자 그놈이 하는 말이 ‘난 네가 남한에서 온 줄 알았는데…‘”
이념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게임 부작용이 전혀 없으며, 규제할 필요도 없다는 주장도 아니다. 문제의 근원과 맞지 않는 규제를 일방통행으로 추진하는 불합리함을 꾸짓고 싶다.
순기능이 있으면 역기능도 있다. 순기능을 살리려면 진흥책을, 역기능을 줄이려면 규제책을 펴면 된다. 게임 정책 결정권자들은 역기능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게임 과몰입이 문제라면 왜 청소년이 몰두하는지 두루 살펴야 하는데 오로지 게임만 독립변수라고 단정한다.
매일 밤 온라인게임에 몰두하는 학생이 있다. 온전히 게임 탓일까. 혹시 이 친구는 오로지 좋은 대학과 국영수 성적만 챙기는 부모와 학교에 질려 게임 단계를 높이는 것 외엔 아무런 낙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닐까.
이 제도의 또 다른 취지는 청소년 건강이다. 밤잠 못 이루는 청소년 건강까지 살피는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그런데 게임 접속을 차단한 밤 12시 이후 청소년은 편히 잘까. 혹시 학원에 가느라 못 들은 EBS인터넷강의로 밤을 지새우지 않을까. 정부는 이것도 셧다운 시킬텐가.
지난 3월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이 세계 36개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라는 발표가 있었다. 뭔 지표인가 봤더니 문화, 사회, 경제적으로 이질적인 상대와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다. 이전 세대보다 세계화, 다문화 사회를 사는 우리 청소년의 인성이 왜 이 수준밖에 안될까. 입시와 경쟁만 강요하는 교육 풍토에선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만일, 이것도 게임 때문이라면, ‘셧 다운제’에 적극 찬성한다.
‘3색 신호등’을 보면 현 정부는 서구, 특히 미국 제도나 관행을 흠모하는 듯하다. 요즘 폭력 게임의 유해성 논란이 인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게임이 마약이라는 주장부터 전혀 무해하다는 주장까지 치열한 논쟁은 있으나 일방적인 제도 도입은 없다. 오바마정부는 되레 교육개혁에 게임의 재미를 활용한다. 과학, 기술, 공학, 수학 공부를 재미있게 만들 게임 공모전까지 만든다.
정치권과 정부는 ‘게임 셧다운제’를 연구할 시간에 청소년이 게임보다 소설을 읽고, 운동을 더 즐길 토양을 어떻게 만들까 연구하라. 기능성 게임 육성책도 공부하라. 그래야만 정치인은 자녀가 입시 공부만 하길 원하는 학부모 유권자 눈치만 보고, 정부는 규제 권과 게임업체로부터 나올 자금만 눈독 들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