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 대표 기업 소니 전성기를 주도했던 오가 노리오 전 회장이 향년 81세로 타계한 것이다.
짧은 인생 그가 남긴 족적은 남다르다. 도쿄예술대 출신 성악가, 지휘자, 제트기 조종사, 그리고 콤팩트디스크(CD)의 표준규격을 만든 CD의 아버지, 성공한 최고경영자. 한때 가전업체에 머물렀던 소니를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키워낸 것도, ‘SONY’라는 브랜드 로고를 만든 것도 그였다. 사장 취임 후 미국 컬럼비아영화사와 CBS레코드를 인수하는가 하면 지난 1994년 가정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컬럼비아영화사를 34억달러에 인수했을 당시 “소니가 미국의 영혼을 샀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지난 1982년 필립스와 CD를 개발하면서 세계적으로 표준 논쟁이 벌어졌을 때 그는 “CD의 녹음시간은 베토벤 9번 교향곡(합창)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며 재생시간 75분짜리 CD규격을 만들었다. CD규격의 표준화다. 오가 전 회장은 적어도 66년 역사 소니에겐 제2의 창업을 진두지휘한 상징이자, 세계 IT 업계의 변신을 이끈 선구자다.
그는 지난 2003년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뒤 도쿄필과 베를린필을 지휘하는 등 음악가로서 제3의 인생을 살았다. 퇴직금 16억엔을 기부해 나가노현 가루이자와 장기요양 시설에 음악홀을 짓기도 했다. 오는 4일에는 이곳에서 동일본 대지진 이재민을 돕기 위한 자선 공연을 앞둔 터였다.
하지만 은퇴 후 무엇보다 오가 전 회장의 맘을 무겁게 했던 일은 소니의 추락이지 아닐까 싶다. 전성기에 비해 몰락에 가까운 모습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던 그 심정을 알만하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가 있는 법이다. 나아가기는 쉽지만 물러나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거취를 놓고 밥 먹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거론하지 않고도. 오가 전 회장의 타계를 다시 떠올리며 ‘아름답다’는 표현은 못 들을지언정, ‘그가 없어 아쉽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퇴장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서한 부품산업부 차장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