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발생한 사상 초유의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에 따라 보안 전문기업에 대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보안 위협 및 위기관리 차원에서 몰려드는 보안 문의로 ‘표정 관리’를 해야할 정도라는 게 보안업계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문의 요청은 금융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동안 보안에 소극적이던 병원이나 일반 제조업체들까지 합세했다.
통합보안관리제품 전문업체인 이글루시큐리티는 요즘 회사 설립 이후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농협과 현대캐피탈 사건 이후로 기업들이 단일 보안 제품이 아닌 통합솔루션을 통한 종합적인 보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권 중에서도 그동안 보안에 무방비 상태에 있었던 제 2금융권들의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경숙 이글루시큐리티 차장은 “최근 한달 동안에만 보안 제품 및 컨설팅 문의가 5~6군데에서 들어왔다”며 “기존에 계획돼 있던 보안 프로젝트들과 겹쳐 눈코 뜰새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저작관리(DRM) 전문업체인 파수닷컴도 고객 문의가 평소 보다 배로 늘었다. 특히 DRM 시스템과 함께 다른 보안 솔루션도 함께 고려하는 곳이 많다는 게 파수 측 설명이다. 이 밖에 시만텍코리아와 이글로벌시스템, 인포섹 등의 보안 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득춘 이글루시큐리티 사장은 “지금 인원으로는 고객 대응에 한계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신수정 인포섹 사장은 “고객 문의가 쇄도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보안에 대한 예산을 미리 편성해 놓지 않은 상황이어서 실제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한두달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보안 솔루션업체 못지않게 시선을 모으고 있는 곳은 컨설팅 업계다. 이번 기회에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자사의 보안 문제점을 종합 진단하고 장기적인 보안 전략 수립도 함께 마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언스트앤영어드바이저리에는 최근 공금융 및 금융기관에서 보안 감사와 함께 전반적인 IT진단을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대한주택보증의 보안 컨설팅 사업을 수주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윤석진 언스트앤영어드바이저리 파트너(상무)는 “보안 시스템 추가 설치는 1차적인 방어막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며 “지속적이고 일관된 보안 거버넌스 체계 마련이 더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보안 업체들은 하반기에 계획하고 있던 보안관련 세미나를 상반기로 앞당기는 곳도 있다. 시기적으로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판단에서다.
박영미 파수닷컴 마케팅팀 부장은 “계획에 없던 세미나가 생기기도 하고, 하반기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보안 행사가 앞당겨지기도 한다”며 “기업들이 보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지금이 가장 마케팅 효과가 높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농협 사태로 전체 보안 업계가 관심을 받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4 DDoS 사건 이후 DDoS 전문 솔루션 업체들만 급성장했듯, 이번에도 일부 영역의 보안 업체들만 직접적인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 것이란 주장이다.
업계 전문가는 “이번 사건으로 서버 보안, 웹 보안, 컨설팅 전문기업체들이 새 비즈니스 기회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들 보안업체들이 보다 통합적인 시각에서 기업들의 보안 요구사항을 수용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