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인문학은 미래로 향하는 나침반

 [월요논단] 인문학은 미래로 향하는 나침반

최근 우리나라 고용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선봉장에 서야할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문학의 추락에 가속도를 붙이는 발언을 해서 핀잔을 샀다. 박 장관이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은 대학에서의 문(文)·사(史)·철(哲)이 과잉 공급되어 그렇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인력 미스매칭을 지적하기 위한 발언이었으리라 짐작되지만, 그래도 안타깝다.

 박재완 장관이 ‘국사철 과잉 공급’ 발언을 하기 바로 5일 전 박 장관은 한 대학을 방문해 한국의 마크 주커버그를 키우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예로 든 주커버그는 전 세계적으로 6억5000명이 가입한 소셜 네트워크 ‘페이스북’의 창업자다.

 지난 1~2월에 중동을 강타했던 민주화 바람도 페이스북에 가입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작됐을 정도로 전 세계인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단순히 일개의 IT기업이 아니라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행위자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마크 주커버그는 그의 영감을 인문학에서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주커버그는 어렸을 적부터 고전소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즐겨 읽었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만들었던 컴퓨터 게임의 배경 역시 시저가 등장하는 고대 로마였다.

 주커버그 외에도 인문학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갖춘 사례는 많다. 지난 1년 동안 지경위원장으로 연설을 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한 인물이 있다. 스티브 잡스애플 CEO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서 배운 유일한 강의가 바로 ‘서체학’이라고 말한다. 실용학문과는 거리가 먼 서체학에서 글씨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하이터치의 감성을 길렀다. 결국 아이팟과 아이폰을 만들어 전 세계인의 삶을 단번에 바꾸는 기업인이 됐다.

 여기서 우리는 주커버그가 오른손에 든 컴퓨터 마우스가 아니라 왼손에 든 고전서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손에 든 기계(아이팟·아이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아이디어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21세의 나이에 무일푼으로 창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부터 나온 창조적 아이디어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인문학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이다. 그는 30대 중반까지도 이탈리아의 실패한 예술가일 뿐이었다. 36세에 시작한 라틴어 공부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라틴어를 독학해 문학과 철학·역사책을 읽으며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았다. 그리고 54세의 나이에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를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해부학·물리학 등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이른바 인문학 범주의 학문인 국어·역사학·철학·사회학은 그 영향력을 계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문학은 경계선 없는 상상력을 사회에 가져오고, 그러한 상상력은 사회에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시인이 언어를 정제해 시를 쓰고, 독자가 그 시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우리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의 시작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가깝게 보면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역사가 없었다면 유럽은 이미 원자력발전소가 가득한 대륙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경험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원전 르네상스’라는 신기루에 눈이 멀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 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말했다.

 인문학은 과거의 현인들과 소통하는 타임머신이다. 동시에 인문학은 미래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역사를 보면 인문학이 발달하는 시대에 인류가 큰 진보를 이뤄냈고, 인문학이 발달하는 국가가 그 시대를 이끌어 간 것을 알 수 있다. 21세기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경제위기와 저성장의 늪은 우리 국민의 사기를 꺾고 있다. 인문학을 탓하지 말라. 오히려 인문학에서 답을 찾을 때다.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 kyh21@kyh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