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이명박 대통령은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을 환경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유 연구원이 환경부 장관직에 발탁된 데 대해선 정부 내에서도 의외라고 할 만큼 예상치 못한 인사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잠잠했던 여성 과기인의 발탁이 집권 후반기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유명희 KIST 책임연구원이 청와대의 부름을 받은데 이어 유영숙 환경부 장관 내정자,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등 주요 직책에 여성의 임명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여성 배려 차원이 아니라 조직통솔과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되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이러한 분위기는 국내에서 여성 과학자가 자리잡기 힘든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하는데 한 몫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 능력 인정받아=여성 과학자들이 조직 통솔능력과 행정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유명희 청와대 미래전략기획관, 유영숙 장관 내정자, 강혜련 이사장 등은 모두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된 케이스다. 특히 유 기획관은 ‘유네스코 60년에 기여한 60명의 여성들’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한국생물물리학회장, 한국유전체학회장으로 일하는 등 조정능력과 추진력을 갖췄다.
유영숙 장관 내정자도 KIST 도핑컨트롤센터와 생체과학연구부 등을 거친 생화학 전문가로, KIST 여성 과학자 최초로 부원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청와대도 발탁배경에 대해 “KIST에서 오래 연구원으로 일했고, 첫 여성 부원장을 지내면서 행정 경험을 쌓았다”며 행정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강 신임 이사장은 정통 과학기술계 인사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처장·경력개발센터 원장·입학처장 등을 역임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고등교육분야 정책자문위원, 교육과학기술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및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배은희 의원과 박영아 의원 등도 과기계 출신 남성 국회의원조차 드문 국회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과기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여성과학자 위상 높일 것=여성의 과학계 등용은 연구 현장에서 여전히 ‘소수자’인 여성의 위상을 크게 높여줄 전망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조사에 따르면 2180개 과학기술연구기관의 2009년말 기준 보직자 2만8164명 가운데 여성은 6.6%인 1864명에 불과하다. 과학기술분야에서 여성의 비율이 16% 정도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 보직자 비율은 아직도 크게 낮은 편이다.
여성 과학기술인이 책임자를 맡은 프로젝트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다. 이공계대학 여성과제책임자의 절반이상(56.7%)은 3000만원 미만의 연구과제를 진행했고, 공공연구기관과 민간기업연구기관에서도 여성책임자 연구과제의 약 60% 정도는 규모가 1억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과학기술자가 수주하는 연구비 비율은 7%가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를 개선하는데 여성과기인의 발탁이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여성과기인은 결혼과 출산을 한 후에 일반적으로 경쟁력 있는 연구실적을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이들을 위한 연구비 지원정책과 평가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이혜숙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은 “여성과학기술인에게 역할모델을 보여주고 인류가 잘 살기 위한 환경을 만들고 치유하는데 여성적인 시각이 적합하다는 측면에서 유영숙 연구원의 환경 장관 내정 등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미취업·경력단절·비정규직 등 여성과학기술인의 다양한 상황에 맞춰 효과적 양성·발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여성책임자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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