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이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 온라인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프로젝트R1(가제)’을 내놓으면서 김학규 IMC게임즈 사장은 오랜만에 벅찬 감회에 잠겼다. 대학시절 처음 게임 개발을 시작해 19년을 일해 온 베테랑 김 사장도 신작 공개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그는 지난 13일 NHN 게임발표회인 EX 2011을 통해 자사의 MMORPG를 선보였다. 전작인 MMORPG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개발 이후 8년 만에 공개한 8번째 작품이다. 화려한 3D 그래픽이 아닌 현재는 보기 드문 2등신 캐릭터의 2D MMORPG였다.
김 사장은 ‘강렬한 액션’, ‘늘씬한 캐릭터’, ‘화려한 그래픽’ 등 대작이라면 으레 따라붙는 표현들을 최대한 자제했다. 오히려 ‘아기자기’라는 여성스러운 단어로 게임의 특징을 설명했다. 아기자기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가 오밀조밀 어울려 예쁜 모양을 일컫는다.
핵심은 캐릭터다. 김 사장은 ‘구증구포(九蒸九曝)’하는 심정으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구증구포란 약재를 만들 때 아홉 번 찌고 말리는 과정을 말한다. 보기엔 쉬어도 개발은 3D 게임 제작 이상의 장인정신이 더해졌다. IMC게임즈는 원화 작업·3D캐릭터 모델링 작업·2D 도트 그래픽 작업 등 리터칭을 거듭하며 캐릭터 제작에 공정의 대부분을 투자했다.
그는 “이용자들이 최대 몇 년씩 소유하고 감정 이입하는 대상이니만큼 캐릭터 개발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일년 반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김 사장은 스스로 ‘예쁜 빈칸’으로 명명한 가상세계를 목표로 개발을 시작했다. 캐릭터는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들되 게임은 빈칸을 많이 만들어 이용자들에게 여지를 제공하는 식이다. 조작도 쉽고 게임의 분위기도 부담스럽지 않게 만드는 것이 꿈이다.
김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R1은 마치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채팅 위주의 온라인 게임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당시 그가 만들었던 MMORPG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라그나로크는 일본에서는 한류 열풍의 중심이 됐고, 그가 일했던 그라비티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사장은 이후 IMC게임즈를 창업하면서 그라나도 에스파다에서 멀티 캐릭터 콘트롤(MCC)이라는 독특한 게임시스템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정리했다. 스타 개발자가 단순히 창업만으로 성공하기 힘든 상황에서, 다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항상 투자 받은 돈으로 개발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금 압박 없이 홀가분하게 개발을 시작한 것만으로 성공이죠.”
김 사장도 현재는 본업인 개발보다 경영에 더 많은 고민을 할애하게 됐다. 불합리한 개발환경을 개선하고 공평한 이익 공유에 신경썼다. 조직이 안정되자 해 본 것을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고민 끝에 익숙한 세계로 돌아간 그는 “게임은 궁극적으로 커뮤니티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용자들이 더 많이 마주치고, 더 많이 상호작용을 나누고, 더 많이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 온라인 게임 개발사의 역할입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kr


